정태춘 박은옥 40 Project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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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40 Project

붓으로 쓰는 노래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내용을 이곳에서 공유합니다.

원문보기: 경향신문 오피니언 "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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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오담 | 600x420 | 종이에 먹 | 2018

노래 만들기를 접고 가죽을 몇 년 잡았었다. 또 칼과 바늘과 실… 무념무상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그걸 접고 카메라를 잡았었다. 작은 사진전도 했었다. 또 몇 년. 

그걸 또 접고 만난 게 붓이었다.

한문 공부를 한다고 펜글씨를 너무 하다가 손가락 뼈들에 무리가 와서 볼펜도 못 잡게 되어 붓을 잡게 되었다. 하여, 그 십 년 가까이에 붓 맛도 알게 되고 한시도 조금 알게 되고….

이제 붓은 쉬이 놓지 않을 것 같다. 난 ‘말하는 사람’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음악도, 사진도, 붓도 도구일 뿐이었다.

한데, 가죽 일도 누구에겐가 제대로 배운 바 없고, 사진도 그렇고 붓도 그렇다. 그저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혼자 애쓰고 궁리했을 수밖에. 물론, 이야기도 그렇다. (어?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배운단 말인가. 내 속에서 그저 줄줄 나오는데, 이리 허튼 소리들이…).

아무튼, 이제 시작한다. 

붓으로 쓰는 노래, 내 이야기들.       

 

2019.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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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마음이 부르지 | 470x450 | 종이에 먹 | 2018

입에서 말들이 쏟아집니다. 

생각이 말을 밀어내지요.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만 

생각들이 통제당하면 또 병이 납니다. 
 

마음이 생각을 만듭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노래가 되고요.

그런데

때론, 마음이 닫혀버리는 때도 있답니다.

아니면, 생각이 닫히고, 말이 닫히고… 그게 다 병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근래의 몇 년… 내 노래요? 

내 안에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병이라 하지는 않고 

다른 것에 열중이지요. 

붓으로 쓰는 이야기들, 

그것도 “말”이고 “노래”라고요. 
 

아직은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말이 있답니다. 

내 안에…. 


201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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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일생(강촌농무), 450×350, 화선지에 먹, 2017

몇 년 전, 강원도 부론의 남한강 강변에 내 작업실을 마련했었다. 

서울 작업실을 옮겨 거기서 고요히 지내면서 그저 이대로 소진되면 참으로 최고의 여생이겠다 싶었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내게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거기서 오래 그러질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오게 되었다.

<강촌농무>는 거기서 며칠씩 지내면서 쓴 글들의 시리즈이다. 

환절기 아침 안개가 참 좋았다. 글로 쓰고 싶은 좋은 말들도 툭툭 튀어나오고. 설사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의 말에 마음 닦을 시간도 조금씩 생겼더랬다.

깊이야 어떠하든 존재 자체에 관한 생각, 존재의 근간인 집착의 문제, 부끄럽다 아니다 뭐 날 평가할 것도 없이 그냥 나를

놓아버리는 그런 시간. 인적도 드물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내게 온전히 보여지는 시간들. 

돌이켜보면 소중한 날들이었다. 그럴 때 그냥 오늘이 일생이고 오늘 하루 고요하게 존재하자, 일생도 그러하다. 부산 떨지 마라… 생각했으나 

그것도 지나간 일이 돼 버렸다.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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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일어나라 | 900x470 | 초배지에 먹 | 2018

바람이 분다/ 사월 거리에 봄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오월 초록의 더운 바람이 분다.

‘바람’은 내게 ‘선동’과 동의어이다. 

우리는 그 선동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에너지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어떤 공적 분노에도 소심하게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그것이 너 혼자만의 분노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바람이 불어올 때,

아니, 외침 소리 같은 뜨거운 광풍이 몰아칠 때,

사람들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은 집단이 된다.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리 시대에. 아니, 모든 세대들에게 크게 작게 그런 시대가 있다. 그런 바람이 있다. 

바람은 꼭 그것만은 아니다. ‘쓸쓸함’과도 동의어이다. 

그것은 서정을 자극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라, 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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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옥 정태춘 40 | 900x470 | 초배지에 먹, 은분 | 2019'

苦路長途共來此 言謝不足故折腰(고로장도공래차 언사부족고절요) 

“힘든 길 긴 여정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로 감사하는 것으론 부족하니 허리를 꺾습니다.”

지난주, 여러 미술가들과의 전시에 나의 붓글들 30여점을 걸게 됐다.

나는 거대한 전시장의 가장 안쪽 구석방을 골랐다. 그리고 그 방 들머리에 이 글을 걸었다.

지난 40년, 늘 나의 이름 뒤에 붙여졌던 아내의 이름을 내 앞으로 모신 글. 은색으로 극진한 감사의 토막 한시까지 한 편 올려서.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물었다. 그는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했다. 

거어 참….


2019.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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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어부촌 | 550×435㎝ | 디지털 프린트에 먹, 스티커 | 2018

歸於富村豪奢街(귀어부촌호사가) 

尋非常口於陋巷(심비상구어루항) 
 

“부자 동네 호사한 거리에서 돌아와 

누추한 뒷골목에서 비상구를 찾네” 
 

아파트 후미진 담벼락 아래에 누가 버렸을까, 약간은 때가 낀 흰 페인트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걸 사진 찍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사진을 보며 짧은 한시 짓는다. 그리고 큼지마악하게 출력해서 그 뒷골목 풍경에 어울릴 글씨를 쓴다. 그리고, 반(反)과 산(産)을 새긴 스탬프와 내 이름을 새긴 낙관을 찍는다. “반산업”의 내 붓글 시리즈라는 뜻이다. 거기다 사채 업체 명함을 한 장 붙여 내 얘기를 끝낸다.

(난 저런 명함을 수십 장이나 가지고 있다. 대개, 요즈음 우리집 현관 앞이나 동네 길거리에서 주운 것들이다. 흔하다.)
 

몇 년 전에 ‘비상구’라는 사진전을 한 일이 있다.

문명 부적응자는 끝없이 비상구를 찾아 헤매고 결국은, 없다.

이 산업 문명은 열외도, 기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가혹하다.
 

어쨌든, 나는 저 찾을 심(尋)자를 좋아한다. 

참 좋아한다.

201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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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960년대 나의 유년은 거의 전통사회였다. 성장하면서 또는 어른이 되면서 근대화, 즉 초기 산업 시대의 물결을 보았다. 

그러곤, 곧 그 가파른 산업화 과정 속에 나도 휩쓸려 들어가 있었고 체제가 몰아치는 속도는 감당 불능이었다.

물론 문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윤리적인가이다. 체제는 인간을 도구화해서 경쟁력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한 보상하고 그 반대 것들은 무자비하게 소외한다.

또 산업의 힘은 막강해서 국가마저 하위구조로 배치했고 얼핏 순진한 이름 ‘국민’이란 말도 사라져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와 광고, 유통자들뿐, 모든 걸 투자자들이 제어 통제한다. 사회·문화·예술·학술·철학뿐인가, 담론까지 ‘시장성’이란 도구로 통제한다. 시장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나는 이 무소불위의 산업주의를 반대한다. 비윤리적이다.

2019. 3. 6

경쟁과 차별의 뜨거운 채찍 | 330×330 | 초배지에 먹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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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르는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땅속에서 움터 나오는 새싹을 막을 순 없지요. 개나리 철쭉 꽃봉오리 터지는 거 막을 수 있나요. 

봄이 어찌 이리 대견한지요.

그건 모든 핑계나 나쁜 조건들이 다 그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쓰기 때문이지요.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어쩌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 견디면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모든 자포자기와 절망도 그 앞에서는 밀려나고 맙니다. 모든 난관도 나약함도, 유혹도 코웃음치지요.

그게 바로 봄이에요.

2019. 4. 3

봄, 힘 내세요 | 540x790 | 모조지에 동양화 물감과 먹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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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터졌다아 | 1380x700 | 화선지에 먹 | 2018. 10

나는 나의 기억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지만, 더군다나 유년의 기억은 더욱 아득하지만, 그래도 자꾸 그때 기억 몇 자락이라도 끌어내고 싶은 이유가 있다. 

다른 문명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만들어낸 기억은 아닐까 아니면, 전생의 기억?

나의 유년. 거긴 기계 문명이 아니었다. 기술과 자본의 문명이 아니었다. 현금이 아니라 대체로 물물교환이었고 그러니 은행과 주식시장도, 청년실업이나 노동의 차별도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가 있었으니 지금 이 산업문명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하여, 진화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또 다른 문명을 꿈꾼다. 

아무튼, 내 유년의 이야기. 어린아이 같은 글씨에 성냥불 같은 횃불을 그리고….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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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 900x470 | 초배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10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5·18’(정태춘 작사·곡) 1절.

1995년에 ‘광주 안티 비엔날레’에서.

201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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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울하지 않고 어찌 | 900×470 | 초배지에 먹 | 2018

우울함이야말로 자기 성찰의 어머니다 

우울해야 

눈알을 내리깔게 되고 

눈알을 내리깔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 성찰이 있단 말인가 

당신네 세상 요즘 너무 명랑하다 

내 시의 일부분.

우울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건 고통이니까.

나도 언제나 명랑하고 싶다.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 모두.

그 어떤 까칠한 성찰도 필요 없는 그런 순수 인간, 그런 순수한 나의 사회.

때로 우울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201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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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강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거기 강변 공사장에서 노을 속에 홀로 초라하게 나부끼는,

흙이 묻어 낡고 찢어진 붉은 깃발을 보았다.

전시장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왜 ‘패잔’이죠?” “예, 그야, 난 한때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한 적이 있고, 졌지요. 그래서 패잔이지요. 끝까지 동의할 수 없는 패배….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자의…. 내가 바란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그런 눈치도 헤아릴 줄 모르고….

2019. 7. 3

깃발만 보면 (반산) | 700×460 | 화선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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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산업전쟁 | 600×610 | 화선지에 먹 | 2018

세기말의 세계화, 관세 철폐, 자유무역…, 그리고 지금 저 사나운 얼굴들.

탐욕과 오만의 무례한 언사들. 소위 21세기 신문명을 이끌고 가는 이들의 대화….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추구한다. 이웃과의 호혜와 선린은 구 문명의 낙후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자국 국민의 삶이 기아선상에 놓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비장하다. 이익이 침해당하면 언제든, 얼마든 보복하겠다고 공언을 한다. 군함과 전투기로 시위를 한다.

차별과 좌절이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가 자기 내부의 성찰로 가지 않고 이웃과 경쟁자들을 향한다.

트럼프, 아베, 푸틴, 시진핑의 얘기가 아니다. 거기 공동체 시민들 얘기다. 그런 야만에까지 왔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더 성장을 해야 하는 걸까. 왜 선한 분배와 공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 언제 우발적으로 꽝! 터지지 않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지금 전쟁 중이다. 새로운 세기의 절대적인 화두는 돈이며 산업문명은 불안 그 자체다. 

지성과 이성은 어디로 갔을까.


201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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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여, 풀들이여 | 670x500 | 디지털 프린트에 먹 | 2010'

나무여, 풀들이여 이제 

떠나라 

옛 오아시스 목마르다 

메마른 바람에 작은 꽃씨 되어 

새로운 오아시스 또는, 신선한 대초원의 별을 찾아 

이제 

여길 

떠나라 

<反産(반산)>

 

도시의 아스팔트 포장 도로 갈라진 틈 사이로도

풀들은 억세게 초록의 잎사귀들을 밀고 올라온다.

그 도저한 생명력을 찬미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 문명에 관한 자책을 해야 할까.

애처롭다. 존재하기의 고군분투. 

저 풀들이나, 인간들이나.

2019.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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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강촌농무) | 450×470 |

초배지에 먹 | 2017

강촌농무 

“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먼 데서 와서 고작 

한두 마디 울고 가는 

새” 
 

궁벽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내 보면 안다. 사람의 거리를. 너무 멀구나, 멀구나… 할 수도 있고, 참 호젓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번잡한 도회지에서 그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외진 산골 외롭고도 호젓한 사람의 거처를 이따금씩 들여다봐주는 작은 산짐승들과 조우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일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여기 도회지에서들 살고 있다.

물론, 저 호젓한 시골마을들에도 유무선 통신은 촘촘히 깔려 있다.

201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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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엔 복권을 사지요 | 450×470 | 초배지에 먹, 복권 | 2018

복권이 당첨되면 뭘 할 거죠? 그건 비밀이에요오. 왜냐면, 쫌…부끄럽거든요. 그런데 왜 사세요? 으음…희망이 필요하지요오. 무슨 희망요? 으음…부자가 되는… 저런 복권 한 장으로 부자가 되나요, 3만달러 시대에? 아니죠, 부족하지요, 계속 사야겠지요오. 당첨될 거라고 믿으시나요? 아니죠오, 사서 버리기 전까지가 겨우 그 유효기간이지요오 뭐… 아아 행운을 기다리는 거군요? 에에이, 행운은 아무한테나 오나요, 그냥 희망을 사는 거지요오 뭐…

201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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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밭둑 뽕나무, 숨이 막힌다 | 450×470 | 초배지에 먹 | 2015

강촌의 늙은 내외 

가랑비 좀 뿌린다고 고추밭 고랑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대비 좀 쏟아져라, 푹푹 찌는 마른 장마 
 

원주 남한강변의 펜션은 그 마을의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그래서 내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장기 임대. 난 저렴한 작업 공간(사실은 스스로의 유배 공간?)을 얻었고 마을은 건물 관리자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봄여름 건물 주위의 무성한 풀들을 감당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예초기를 마련해서 직접 풀을 베고 치우기도 하지만 자주 가 있지 못할 때에는 감당키 어려울 만큼 자라 있어서 돈을 내고 마을에 부탁해야 했다. 그러면 이장이 직접 오거나 마을 노인회장님과 총무님이 오기도 했다. 이장은 좀 젊은 분이지만 회장님과 총무님은 나보다 훨씬 더 연세가 많은 분들이다. 돈 때문이 아니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참 마음 편치 않은 것은 푹푹 찌는 더위에 그분들이 힘들여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남의 노동을 산다는 일이었다. 이것이 윤리적인가…. 

노인회장님 내외분은 펜션 옆 그분들의 고추밭에서 자주 마주쳤었다.

2019.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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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越向異世 吾欲從去之 

(일월향이세 오욕종거지) 

靑夜疑悲歌 陋巷酒燈愁 

(청야의비가 누항주등수) 

“해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나 거기 따라가고 싶어라 

푸른 밤 슬픈 노래 들릴 듯하고 누추한 뒷골목 술집 등불 쓸쓸해라” 
 

일종의 정신 질환일까? 나는 늘 다른 세계를 꿈꾼다. 비난받아도 싸다.

진보는 도덕적 책임을 무기로 싸워왔다. 그게 무너지면 끝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에게선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성장률이 답보하고 있는 유럽이나 미·일·중·러의 주변국들…그리고 북한…. 불안하다.

그리고 국내 상황…. 우울하다. 

결벽하고 진정성 있는 진보와 그들의 낙관적 전망과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쓸쓸하다.

2019. 8. 28

해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 750×500 | 디지털 프린트에 동양화 물감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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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颱風折腐樹 後陽輝健葉(태풍절부수 후양휘건엽) 

“태풍은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그 뒤의 햇살이 건강한 잎사귀 위에 빛난다”
 

초가을 태풍이 지나갔다.

그동안 긴장과 우려를 동반했고 결국 많은 상처를 남겼다.

썩고 허약한 나무들 거리에 쓰러졌고 나뭇잎과 잔가지들 도로 위에 나뒹굴었다. 거리가 볼썽사나웠다.

그러나, 그 태풍을 묵묵히 감내한 가로수 잎사귀들 건강하게 한가을로 간다.

그 위로 드문드문 맑은 햇살이 빛난다.

2019' 9. 11

태풍은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 600x300 | 화선지에 먹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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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강원도의 어느 지인께서 보내주신 국화 모종들이 그 가을 옥상 텃밭가에 화알짝, 오오래 피워주었었다.

더러는 다른 작물들 사이에서도 어느날 갑자기 꽃이 맺히고…. “호오, 거기에도 네가 있었구나.”

그 국화들이 올가을 또 꽃을 피우고 있다. 

올봄부터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여름에 잠깐 쉬고 이제 가을 일정에 들어가야 한다.

10월, 11월 두 달 동안 10개 지역 콘서트를 돌아야 한다. 40여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내 텃밭가의 국화 무더기들, 자주 보아주는 이 없이도 거기 옥상에서 저희들끼리 만발할 것이다.

감사한 가을이다.

2019. 9. 25

한가을 자주 국화 | 900x470 | 초배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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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邊秋蘆田(강변추로전) 강변엔 가을 갈대밭 

西天熱火海(서천열화해) 서편 하늘엔 뜨거운 불 바다 
 

유소년 시절에도 시골의 고향 들판에서 노을은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광활한 간척지와 거기 연이은 갯벌 너머로도 해는 날마다 졌을 테니까. 그런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 들어 도시 살면서, 또 옥상 있는 집에 살면서 거기서 만나는 노을에 너무 많이 감격스러워한다. “오오… 저거 좀 봐아….”

아마도 노을 장관의 각별함이 나이와도 관련 있을 듯싶다. 그래서 어린 시절까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들판에서 무감하게 노을 바라보던 그때 그 소년은 지금의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감정 과잉과 한 편의 청승.

 

그 소년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2019. 10. 9

붉은 노을 장엄하다 | 700x430 | 초배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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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出夕江邊(물출석강변)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오 

傷心月與風(상심월여풍) 달빛 바람에 마음 다쳐요 

亦問草與波(역문초여파) 풀과 물결이 또 묻겠지요 

何獨銀河塞(하독은하새) 은하의 변두리에 왜 혼자냐고요 
 

콘서트를 하면서 우린 객석을 잘 볼 수가 없다. 핀라이트가 늘 우릴 조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반주자들이 객석을 더 잘 본다.

코러스 멤버가 말했다. “공연 중에 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왜 그럴까? 이제 늙어버린 노래에 대한, 그렇게 자신들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에 대한 회한일까? 아니면, 청춘기의 뜨거운 열망들이 아프게 반추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열망으로 우린 결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일까? 

사납고 악한 의지들이 시대를 뒤덮고 있다. 

저녁 강변 쓸쓸하다. 

2019. 10.23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오 | 700x350 | 화선지에 먹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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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秋史) |                          | 화선지에 먹 | 2019

讀其冊間五六日 (독기책간오륙일) 不可執筆一 (불가집필일)

그 책 읽는 오륙일간 붓 한 번 잡을 수가 없었네.

欲買史詩記目錄 (욕매사시기목록) 何久不作詩 (하구부작시)

추사의 시집을 사려고 목록을 적어두니 또 얼마나 오래 시도 짓지 못할 것인가. 

秋史弘濬兩先生 (추사홍준양선생) 歲外舞亦嘆 (세외무역탄)

추사와 홍준 두 선생이 세월의 바깥에서 춤추고 탄식하고.

勿自言老去途遠 (물자언로거도원) 爽朝孫登校 (상조손등교)

스스로 늙었다 말하지 마라, 갈 길이 멀다. 상쾌한 아침녁 손주는 학교엘 가고
 

유홍준 선생이 쓴 <추사 김정희>를 보고 있다. 다 보고 책을 접기도 전에 감흥이 너무 많아

못난 글씨로나마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두 분께 감사하다고.

배접도 안 한 글씨를 사진 찍어 올린다.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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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 / 통제와 차별에 대한 | 410×410㎜ | 초배지에 먹 | 2018

아나키, 
통제와 차별에 대한 맹렬한 거부 
사적 자유에 대한 뜨거운 열망 
정의와 평등에 대한 열렬한 지지. 

 

이건 내가 내린 정의나 해석이 아니다. 웹 사전의 정의를 내가 좀 풀었을 뿐이다. 그런데 같은 ‘아나키’와 ‘아나키즘’을 설명하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 왜냐하면 사전도 어떤 강고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순수한 객관성을 표방하는 어학 사전도 말이다.

국가나 조직에서 중시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그 조직의 효율성이다. 조직의 권위에 도전하면 다친다.

핵심은 간단하다. 자유와 평등이다. 그걸 얻기 위해 민주주의가 가고 있다. 아직도….

2021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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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전기 드릴 폭풍처럼 | 470×440㎜ | 초배지에 먹 | 2018’

한때 열심히 옛 칼들을 모은 적이 있었다. 무기류가 아니고 대개 크고 작은 주머니칼. 즉 폴딩 나이프 같은 것에서부터 작업용이나 도구용 칼들. 해외에서 사 들고 오더라도 세관 통과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정도의 것들.

고르는 기준은 실용성. 지금 당장 쓸 수 있게 하자 없이 튼튼한 것. 다음은 조형성. 공예물로서 얼마나 창의적이며 아름다운가. 그리고 친연성(?). 만들고 쓴 지 얼마나 오래되어 사람의 손길이 진하게 묻어 있는가.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은 흔치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선 칼을 터부시하는 풍조가 있어 단 1원이라도 돈을 주고받아야 한단다. 그래서 칼을 굳이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고 괜찮은 것은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저렇게 더러 요즘 대장간에서 나오는 정말 잘생긴 전통 식칼을 만나기도 한다. 

칼의 본질은 날이다. 나는 칼날이 품고 있는 긴장감을 좋아했다. 무기류의 살기가 아니라 무언가는 베어내 버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 예리하게 엄격한 창조적 긴장감을 말이다.

201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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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평택 1. | 700×690㎜ | 초배지에 먹 | 2019

幼年野端其淺海(유년야단기천해) 
어릴 적 들판 끝의 그 얕은 바다

越水何有吾不知(월수하유오부지) 
물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 나 알지 못했네

遠回基地至邑內(원회기지지읍내) 
미군기지를 멀리 돌아 읍내에 이르면

越懼鐵路生疎人(월구철로생소인) 
철길 건너기 두렵고 낯선 사람들

棹頭里是吾故鄕(도두리시오고향) 
도두리가 바로 내 고향

早春黃沙滿綠夏(조춘황사만록하) 
이른 봄 황사에 초록 가득한 여름

秋黃金波猛冬風(추황금파맹동풍) 
가을 황금 물결에 사나운 겨울바람

只歌平生戀其野(지가평생연기야) 
다만 평생 노래하며 그 들판 그리워했다네

 

올해 전국 투어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지난주에 그 21번째 도시 안동 공연을 마쳤다. 그리고 내년 연초에 평택 공연을 시작으로 3월까지 더 진행될 것이다. 사실 평택 공연은 지난 10월에 잡혀 있다가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이틀 전에 취소되었다. 아, 하필 고향에서의 공연이…. 그것이 1월4일로 준비되고 있다가 또 갑자기 11일, 12일로 연기되었다. 아, 하필 고향에서의 공연이 왜 이리 어려운지….

고향은 참 멀다. 누구에게나 그럴까?

2019. 12.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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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無二日(천무이일) 
國無二民(국무이민) 
하늘에 두 해 없고 나라에 두 백성 없다


 

공자 왈. 천무이일(天無二日), 그것은 진리다. 뒤엣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배치된 말이다. 그다음 말로 국무이군(國無二君), 나라에 두 임금 없다 하니 그것도 그때로서는 못할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 말도 버려진 말이 된 지 오래고 민이 군을 뽑고 군이 민을 섬긴다고 하는 세상이다. 섬긴다면 차별 없이 섬겨야지, 세계 어디서나 차별이 극심하다. 어디 누구는 그러려니 하고 어디 누군가들은 처참하다.

새해 벽두, 달콤한 덕담보다 비명 소리를 전하는 것이 절실한 아, 대한민국….

이 땅에서 차별받는 모든 이들 복 받으소서.

2020. 1. 1

차별하지 마라 | 600×300㎜ | 초배지에 먹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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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저 산 | 470×430㎜ | 초배지에 먹 | 2019

심산무도(深山無道) 

깊은 산, 길 없다 
 

가자, 저 산

장엄하구나

가자, 저 산

고요하구나

가자, 거기 길 없는 골짜기 물소리 있고

야생초 싱그런 풀밭도 있으리니 

깊은 산 사람 발자국 없고 

길 없으면 또 저들의 문명도 없으리니 

가자, 저 산 

깊은 산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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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시다, 라는 | 750×390㎜ | 초배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노래는 시다”라고 추켜세워질 때, 짐짓 겸손을 표해야 하나 노래 속의 텍스트를 목소리로 풀어내는 가수의 속내에는 저런 것이 있다. 문학도 시도 아닌 또 다른 무엇. 

그러나 전제는 그 텍스트들의 의미를 한껏 부풀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텍스트가 음악 속에 묻혀버렸거나 현란한 음악의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했을 때, 그건 또 말장난이 된다.

노래들 속의 언어가 사라졌다. 노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노래는 더 이상 이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할까…. 

202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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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 700×690㎜ | 화선지에 먹 | 2014

星邇輝吾頭頂上 

不知此亦星中一 

“별은 가까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여기 또한 그 별들 중의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몇 해 동안 오며 가며 지내던 원주 작업실에서 쓴 글이다. 거기서 참 많은 글들을 썼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나와 만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난다는 것. 자연 아니, 우주 공간. 비록 또한 나의 눈으로 보고 만나는 새로운 세상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상상과 사유는 달라진다. 그리고, 무슨 깊은 통찰이 없더라도 그 시간들은 ‘고요함’으로 내게 보상해 준다.

그 작업실을 지난주에 비워주었다. 내게 장기 임대해 주었던 마을에서 매물로 내놨기 때문이다. 

거기 고적한 강변 펜션의 짐들을 서울 한복판으로 다시 끌고 들어오다니….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그 공간과 시간을 다시 만드는 수밖에. 형편 되는 만큼…. 

2020.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