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40 Project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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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검열제> 철폐 운동

1991’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 .” 앨범 발표
군부 정권과 보수 지배층에 대한 공격, 사회 모순 고발의 격정적인 앨범
“일어나라, 열사여”,“우리들의 죽음”등 수록

In 1991, Joung released the controversial "Ah! Daehanminguk . . .(Ah! Korea . . .) album."  In this album Joung directly criticized military dictatorship and conservative ruling class.  This album contains songs such as "Ireonara Yeolsa yeo (Rise, Patriots!), "Wurideul ui Jugeum (Our Death).”

鄭泰春の『あぁ、大韓民国…』アルバム発表
軍部政権と保守支配層に対する攻撃 / 社会矛盾を告発する激情的なアルバム  「立ち上がれ、烈士よ」,「我らの死」など収録

 

 

 

 

 

 

 

 

 

 

 

 

 

 


 

 

 

 

 

 

 

 

 

 

 

 

 

 

 

 

 

 

 

 

 

 

 

 

 

 

 

 

 

 


1993’
정태춘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 발표
권력이 군부에서 자본으로 이양되고, 유사 민주주의로 투쟁이 종식된 상황에 대한 절망감과 새로운 희망 찾기의 메시지

 In 1993, Joung and Park released their new album, "92 nyeon Jangma, Jongno Eseo (At Jongno, <during> the Rainy Season of the Year 1992).  This album was messages of frustration at the situation where power had been transferred from the military dictatorship to capital, and where the struggle had come to an end due to the emergence of fake democracy, and of trying to find new hope.

鄭泰春・朴恩玉の『92年長雨、鐘路にて』アルバム発表
権力が軍部から資本へと移譲され、擬似民主主義により闘争が終息した状況に対する絶望感と、新たな希望探しのメッセージ


 이 두 앨범을 법률에 의한 사전 심의(사실상의 겸열)를 거부하고 불법으로 출시(운동 진영에 배포, 전국 순회 공연 사인 판매).
90년과 93년 2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에 검열제 철폐 요구. 93년, 정부가 고발, 기소, 재판.

6년여의 검열 철폐투쟁 전개
 Joung and Park released the 2 albums above without complying with the policy of pre-deliberation (de facto censorship).  He demanded lifting of the government's pre-deliberation process by having two press conferences in 1990 and in 1993.  In 1993 the government pressed charges against Joung and Park for violating pre-deliberation [process] regulations.  Joung and Park’s struggle against censorship lasted over 6 years.

この二つのアルバムを法律による事前審議(事実上の検閲)を拒否して、不法で販売(運動陣営に配布、巡回コンサート、サイン販売)
90年及び93年、2度の記者会見を通して政府に検閲制の撤廃を要求
93年、政府からの告発起訴による裁判など、6年余りにわたり検閲撤廃闘争展開

 

 

 

 

 

 

 

 

 

 

1996 6’
법 개정과 헌법재판소의 “검열제 위헌” 판결,  
재판부에서 정태춘 무죄 판결
이후, 가요에 대한 사전 검열제 철폐
이에 따라 두 음반 시중 합법 판매 ([한국음반])


검열 철폐 기념 합동 콘서트 “자유”
(1996.6 / 서울대학교 야외 공연장)
 
In 1996 the Constitutional Court in Korea found that rules and regulations concerning 'the policy of pre-deliberation' were unconstitutional. Following the ruling, the government abolished 'the policy of pre-deliberation.' Henceforth, Joung and Park's 2 albums above could be sold in public legally now. ([Hangook Record Co.])
Joung and Park held the joint concert “Jayu (Freedom)”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mphitheater in June of 1996 to celebrate the abolition of pre-deliberation.

1996. 6 法改定と憲法裁判所からの「検閲制の憲法違反」の判決、裁判所が鄭泰春に無罪判決 / 以後、歌謡に対する事前検閲制が撤廃される/
これに伴い、上記の二つのアルバムを合法的に市販([韓国音盤])
検閲撤廃記念合同コンサート「自由」(1996.6 /ソウル大学野外公演場)

 

 

 



    
 

 

 

 

 

 

 

 

 

 

 

 

 

 

 

 

 

 

 

 

 

 

 

 

 

 

 

 

 

 

 

 

 

 

 

 

 

 

 

 

 

 

 

1996’
정태춘 박은옥, [민족예술인총연합]의 <1996' 민족예술상> 수상

In 1997, Joung and Park
received the Korean People’s Artist Federation’s "Korean People’s Art Award".)

1997, 鄭泰春・朴恩玉、民族芸術人総連合より「民族芸術賞」受賞

 

이미 민주화 운동 진영, 문화운동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춘에게 새로 만들어진 직설적이거나 전투적인 노래들을 발표할 수 있는 방법은 법률을 어기고 정부의 사전 검열을 거부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노래들을 물론, 암암리에 녹음 제작하여 운동 진영으로 배포할 수도 있었으나 정태춘은 정면 승부를 택했다.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검열 거부를 선언하고 그 폐지를 요구하며 앨범을 출시, 해당 법률이 개정될 때꺼지 싸울 것을 밝혔다.

이 앨범을 카셋트로 제작하여 전국의 운동 진영으로 배포 판매하고 정태춘의 각종 공연장, 집회장 등에서 직접 사인 판매하고 지지 서명을 받는 <가요 검열제 철폐 운동>에 들어갔다.

정부가 <아, 대한민국...> 앨범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두 번 째 비합법 앨범이 나왔다. 이는, 정부의 고소를 유도하여 가요 검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이었다.

두 번 째 기자회견 직후 정부는 정태춘을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전국 경찰서에 수거 지시를 내렸고, 정태춘은 재판부에 <위헌제청 신청>을 하면서 정부와 국회 등을 접촉하고, 진보적인 음악인들과 <가요 검열제 철폐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농성 등 전면 투쟁에 들어갔다. 법률 지원은 변호사 노무현 그리고 천정배가 맡았다.

 

 

국회는 개정안을 만들기에 이르고, 정부는 기존 법률의 미미한 수정안을 만들어 정태춘에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등 검열 폐지는 기정 사실화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국회가 먼저 검열적 사전 심의를 전면 폐지하는 개정 법률을 통과시키고 이어, <헌법재판소>가 <위한> 결정을,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게 되었다.

두 앨범은 비로소 합법화되어 시중에 배포할 수 있게 되었고, 1978년 첫 앨범 제작 때부터 시작된 <가요에 대한 표현의 자유> 문제는 일단 표현자의 승리로, 정부의 검열 기구 폐지로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