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40 Project 사업단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95 | 현진빌딩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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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의 시집들

 

   정태춘 시집

 <노독일처>

  2004년 실천문학
 

 

80년대 ''변혁''의 시대와 90년대 ''환멸''의 시대를 겪어온 가수 정태춘(50)이 자신의 노래 ''시인의 마을(1978)'' 이

시공을 흘러 그의 열 번째 음반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2002)''가 나오기 까지 지나왔던 시간을 차분하고도 냉철하게 정리했다.
우리 사회를 ''서정주의가 노래했던 지난날들이 황폐해진 민중의 삶으로부터 이탈해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신자유주의 굴레를 써버렸다''며

오늘날 우리 사회를 차갑게 질타한 정태춘. 오로지 노래를 통해서만 그의 신념이 분출되는 것은 아니다. (후략)

CBS 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정태춘 시집

 <슬픈 런치>

2004년 / 미 출판

 

 

 

 

 

 

 

 

 

 

 

봄 바람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개나리 필똥말똥한
강변북로 노을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그랬다
시집 다 읽어봤는데
“예외자의 솔직한 이야기들 …”
예외자 …
오늘이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경향과의 그것도 없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봄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고향
못자리 봄 논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온 몸 잡아당기는 끈적한 진흙 속에
늘 감추고 살아온 두 발을 거기 깊숙이 박고
들판 너머 노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고 싶었다

또는,
젖은 발목 시리게
논둑 위에 서 있고 싶었다
봄바람에 서러워 엉엉 울며
그렇게
거기
고향 들판에 서 있고
싶었다

저 자본주의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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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

 

3.20 탄핵 반대 촛불 집횐지 촛불 문화젠지 한다고
광화문으로 사람들이 버글버글 모여드는데
시간도 되기 전에 벌써
노점상들이 먼저 몰려와 있다

서울 시내 노점상 단속한다고
공권력이 참으로 무자비한데
감히, 시내 중심가
동아일보 구 사옥 아래에도
떠억하니
포장마차 서너개가 들어앉아
있다

어이, 저것 봐
자본주의에서 버틸려면
저 정도는 깡다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 - - - - - - - - - - - - - -

 

 

 

 

세상 구경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갔따.
암사동 부근 종점까지 갔따.
뚝 위에 자전거를 뻗쳐놓고
강 수면께까지 내려갔따.
강 건너로 아차산 긴 능선이 펼쳐져 있꼬
그 아래로 경기 북부, 강원도 쪽 산업망으로 연결되는
준 고속또로
상당한 물똥량이 움직이고 있었따.
소형 대형 트럭들과 소형 중 대형 승용차들, 버스들과
일부는 그 용도가 애매한 차동차들이
서울 경기 동북부 지역의 각종 산업을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따.
1차, 2차, 3차 산업 …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방직공장 직조처럼 짜여지고
그 물자, 노동력, 각종 협상안과 메시지들이 물 흐르듯
질주하는
여기 풍광 좋은 강변도 예외 없는 자본주의의 현장
공장과 시장만 현장이 아니다
아차산 능선을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는
이 강물도 이미 저 위에서 수력발전소 뿌로펠라를
숨가뿌게끔 돌리고 내려와
천천히 흘러가며 쉬고 있는 중
그 위로 국제 군수산업 분야의
거대한 씨누크 헬리콥타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상류쪽으로 날라가고 있었따.

남한 자본주의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나는
뚝 위에 자전거가 잘 있는지
뒤돌아 보았따.
나의 애마는 그야말로 당나귀처럼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꼬
흡족한 마음으로 나는 그 놈을 타고
잠실  방향으로 되돌아 왔따.

오는 길에
대체로 건강이 안 좋아 강에까지 나와 운동
열심히 하는 지역 주민들과
될수록 눈 마주치지 않고 페달만 밟았따.

또, 오는 길에는
천호동 쯤의 고수부지에서
전경 1개 소대가 다중진압 훈련을 열씸히
하고 있는 것을 보았따.
어떤 실업자들은 옆에서 그걸 주의 깊게 구경하고 있꼬 …
전경들은 완전 군장을 하고
국민소득 2만 불 달성을 위한
남한의 구멍 투성이 산업을 보호하고
소수 불만세력으로부터 그 자본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거기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따.
헬멧을 쓰고,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장단 맞춰 군화발로 그들의 영토
그 신음하는 식민의 대지를 쾅 쾅 울리고 있었따.

나도 구경했따.
어여 가자 당나구야.

대체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내천 건너 시영아파트가
뚝방 아래로 주욱 줄지어 있고 그
참 아름다운 뚝방 다리 건너
서울 아산 병원에서는 수백 개의 진료실, 입원실
산업 전선에서 일부 또는, 심각하게 타격받은 전사들이 최첨단 의학으로 갱
생을 꾀하고 있꼬,
아주 희생 당한 사람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영안실
현관 앞이 한가했따.(하지만, 밤이면버 글버글한다. 주로밤 에들 문병온다.
바쁘니까)

나는 그 모오든 걸 다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따.
나의 당나귀를 타고오.

그리 고, 그 당나귀를 아파트 계단 난간에
중국산 자물쇠로 단단히 동여 맸따.
또,
간간이 세상
구경 나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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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꿈꾸는가?

 

나의 적은
국제 자본주의 그 자체
지금은
유배지 골방에
이불 쓰고 누워있지만
때가 되면
그리고,
기운을 차리면
내 머리맡의 총을 들고
다시
나설 것이다
탕 탕 ! !

그러나 우린우리의총을한번도가져본적이
없다그리고모두들나이를너무많이먹어버
렸다그래서유배지가더 욱편안하다고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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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땅에 지고

 

우리 아파트 아래  1층
작은 정원의 목련 나무
시들은 잎사귀 뚝 뚝 떨어뜨리고
올 봄도
그 기운 신선한 것들
모두 나른해져만 가는데, 그렇게
계절 변화의 팽팽한
긴장감이 이제
서울 상공을 지나가 버리고
말았는데
나는
우리 기다란 베란다
깨진 화분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기다 뭘 좀 심을까?
겨우내 바싹 마른 저 흙에
뭔 씨라도 좀 뿌려볼까
생각한다
물 흠뻑 주고
채송화 씨라도 한 줌 뿌려볼까
생각한다

나의 봄
내 가슴의 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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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안테나

 

아파트 옥상 청소한다고
거기 있던
큰 다라이만한 접시 안테나 네 개가
주차장 옆 땅바닥에
내려와 있다

그놈들 벌써 며칠 째
각자
서로 다른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며
외계로부터
지구의 극소수 반체제 세력을 지원하는,
우주 기동 타격대가 날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칙 치이익 …! … )

인간들의 소단위 자급 자족 체계를 붕괴시킨
지구 곳곳의 대공장들과
전 지구를 장악한 유통 쪽의
주요 물류 기지들을 언제 공격할 것인지 …
물자가 아닌
개념일 뿐인 화폐와
그 집합소인 거대 은행들
거긴 언제, 또
잉여와 투기 자본의 집합소인 금융 시장의 전산망은
언제쯤 공격할 것인지 … (칙, 치이익 …!! . 칙…)
지구 전 인간의 두뇌를 장악하고 있는
소위 언론, 유무선 방송망들은 또 언제 …
모든 인간의 개인 정보를 집적하고 있는 DB,
또, 일부 불순분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국제 공조 통합 정보기관의 특수 통신망들은 또 언제 …
(칙, 치이익 …!?? …치익?)
지상의 모오든 국가 기관들과
첨단 무기 공장들 …

옥상에서 내려 온 안테나
페인트들이 쩍 쩍 갈라져 들고 일어나고,
몹시 녹이 슬어 볼품없는
큰 다라이만한
회색빛 접시 안테나 네 개가 벌써
며칠 째
각자의 방향으로 하늘만 바라보며
외계의 신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모두 줄이 끊어진 채

아, 줄이 끊어져 있다니 …
줄이 …

어떤 놈이
줄을
끊었지?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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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오늘
하두 심심해서
테레비를 켰더니
마침
도옹해애물과 … 를 하더라구요
그래,
테레비 꺼버리구
쏘파에서
한 잠
늘어지게 잤지요

잘못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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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점심 때 회덮밥을 먹으면서
마누라한테
“어제 공연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
누가 무대 뒤에서 나한테 총을 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
그랬더니
“누가 당신을 쏴?” 해서
둘이 낄낄 웃었다
“왜 당신을 쏘는데?” 해서
또 웃고 …
클로포트킨의 자서전을 읽고 난 후유증이다

정말 어디선가 내가
한 방 맞으면
저 어수선한
내 물건들 누가 다 치우지?
그건 그렇고,
누가 날
쏘고
싶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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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런치
 

잭 스테이크, 5층
올림픽 공원 쪽 창가에서
빠알간 야채 수프를 홀짝이고 있었다

빗물이 주르르 주르르 흘러내리는
잘 닦여진 유리창 너머로
일기는
촉촉한 오후 안개비 모오드

멀리
공원 반대편 끝자락 쯤의 잘 자란 포플러나무들이
늪 뚝방 둔덕으로 커텐처럼 줄지어 서 있고
그 너머
세상에 대해선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안개비와
푸른 나무들 커텐 너머
그저 희뿌열 뿐,

거기가 바로
나의 환상이 머무는 곳
때론 가슴 뛰거나
눈물 나게 할 것 같은
자본주의 세상
저 너머 …

호주산 소고기 등심 안심 번갈아 썰어 입에 집어넣고
틀니로 우그작 우그작 씹으며
빗물 주르르
주르르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를
망연히
망연히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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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을

 

아침 열 시 조금 넘어,
BMW 신형 700 씨리즈를 현금으로 터억 턱 뽑아 타는 사람들과
국산 소형 승용차 중고를 끌고 댕기는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시를 난 잘
이해를 못하겠다. 또, 그들이 시내 도로를 사이 좋게
질주하는 것을 난 잘 이해 못하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구 서울운동장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밀리오레 빵빵한 옥외 스피커에서
“5층, 6층은 팻션을 완성할 수 있는 잡화가  …”
팻션을 완성한다? 처음 듣는 말, 하지만
기막힌 말
그런데, 거기서 패션을 완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야?

거무튀튀한 비둘기들이 아직도
휘 휘 날아오르는 청계 5가
좌회전하여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고가를 타고 싶었는데,
그 마져 이명박 시장이 부숴버렸다
동대문 앞에서
한 경찰은 열심히 딱지를 끊고
한 경찰은
오토바이 짐꾼들과 대판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종로통을 시속 80Km로 달려와
광화문 이순신 장군 안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 광고판 뉴스에
“태국 방콕에서 한국인 1명 권총 맞아 피살”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올라가니 연습실에서
먼저 온 장사익 씨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
를 연습하고 있었다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구나”

아,
꿈을 깨고 싶다
이 꿈에서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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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거짓말 그리고, 연극
 

담배가
다 떨어졌다
보루로 사다 피던 타임도
면세점에서 사 온 다비도프도
다 떨어지고
집 안 여기 저기 굴러다니던 것들도 찾아내서
다 피고
이제
집 안엔 담배 한 개피도 안 남았다

여기서
내 인생도 그만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나 …
라고
괜히 무겁게
분위기 잡으며
동네
쎄븐일레븐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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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담배

 

“자넨 담배 안펴?”
“  …  ”
“어, 세상 견딜만 헌 모양이지?”
“아닙니다. 피웁니다”
“어, 그럼 같이 펴어.
낫살이나 더 먹었다구 맞담배도 못하게 허면
담에 나 또 만나고나 싶겄어?”
“ …”
“뻑, 뻑, 퓨우 …
이렇게 살다가 남들보다 쪼곰 일찍
이 세상 하직하는 겨어
억울헌가?”
“ …”
“뭐 언 미련 있겄어어
뻑, 뻑,
퓨우우 … 그런데
최근에 영국에서 나온 굉장한 연구 결과에 의하먼
담배로 인해서
10년 수명이 단축된대는겨어 뻑 뻑,
퓨우
퓨우 …

어여 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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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재미

 

저녁에
삼겹살이나 먹겠다고
성내동 뒷골목을 가는데
나보다 조금 더 늙은 한 할배가
재활용품 가득 실은 리야까를 끌고 가고 있었다
거기엔
어느 집에선가 쓰다 버린 싸구려 샹들리에와
철제 탁자 받침 등이 실려 있고, 그 위로
접은 박스들이 수북하게 실려 있었다 문득,
내 인생도 이제 저기에 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 생각한다)

나도 때로는
세상 좀 재미나게끔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청승도 그런 “재미”의 한 가지일진저 …

난 거기 실려 끌려가면
무엇으로 재활용될까
내 몸뚱아리 무엇으로 재분류되어 어디로 다시
실려갈까 …
정도까지만 생각하는
그런,
생각하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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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목계 나루
 

바람은 날더러
무엇이 되라 하네
아무 것 될 것 없는
날더러 …
 
구, 목계 장터 신작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주홍 나비 파닥이며 휘청거리며
한여름으로 가는데
바람은 날더러 …

나룻터 꼭대깃 자리
신경림 시비가
황토 강물을 등지고 서서
눈치, 향어 뛰어오르는 것도 보지 못하고
길 건너
조선조 아무개들 공덕비만 바라보며
너희는 그래 고작 그것이 되었느냐고
시비나 걸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여기 부재로서
신경림도 이제 역사가 되었는데

그 옆으로
의용 소방대 콘테이너 박스를 치고 온
바람은
초로의 날더러 자꾸 너는 장차
무엇이 될라나 묻는 듯 …

옛날엔
횟집 색시집이 즐비하고요
길 가는 평당 백만 원도 넘었다지요
목계 다방 얼굴 검은 마담이
맥심 아이스 커피를 타며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곧 물을 것처럼
저 건너
솔밭에선 인근 외지 사람들 다 놀러와서
개도 잡아먹고
철 내 노랫소리
넘쳤지요, 그런데 …

신경림 선생
지금은
이철수 글씨로도
여기 동네 사람들한테 이제 새삼
말동무도 안 되는데

어느 모자 쓴 노인네
남방 단추 다 풀어헤치고
고물 오토바이로 쏜살같이
포장도로를 달려 지나간다

목계 분교
애프알피 충무공이
몇 안 되는 아이들더러
역사는 너희더러
나는 너희더러 또 무엇이 되라 하리라 하시는 중인데
장군, 외지 장군님
강이 저 아랜데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저기 정거장 일대 집들을 다 덥쳤겠습니까?
그걸 믿으십니까?
어쨌거나,

남한강 강물을 거슬러
강 뚝방을 타고 온 바람은
선대 지방 수령들 공덕비 풀숲을 잔잔히 흔들며
지나가며
날더러
무엇이 되라

뜨겁거나
허망하거나 그저
남은 생
아무 무엇이라도
되라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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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울함이야말로
자기 성찰의 엄마다
우울해야
눈알을 내리깔게 되고
눈알을 내리깔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 성찰이 있단 말인가?
당신네 세상
요즘 너무
명낭하다
나 지금
우울하다

당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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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트 가는 길

 

도심
출 근길
한 타임의 횡단보도 신호 대기자들이
신호에 따라 일제히
무리 지어 길을 건너고
그 텅 빈 자리
헌 가방 두 개
땅바닥에 내려놓고 서서
조간 신문을 읽는
허름한 젊은 사내

거기서 무얼 찾으려는가
세상, 무너지길 기대하는가
모든 게 어느 한 순간에 올스톱 되길,
그럴 징후를 찾고 있는가?
그리 열심히

아침부터
관능적으로 치장을 한
늘씬하고 팽팽한
젊은 여자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토오쿄 시부야

로프트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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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쿄, 맹더위

 

니뽄의
거미줄 같은 모든 길은
상가로 통한다

이건 체제의 문제라고
체제와 문명에 관한 문제라고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숙자

벌써 해는 중천이고
다꾸시 정류장엔 긴 줄이 전혀 줄지 않는데
그는 웃통을 벗어버린 채
배를 내놓고
오전 맹더위 햇살에 일광욕을 즐기며
정류장 옆에서 아직도
자고 있다
옆의 동료는
밤 새 머리만 들이밀었던 종이 박스에
분홍 토끼 인형 베개만 달랑 남겨두고
그늘로 옮겨 앉았다

야구 선수 마쯔이의 생명보험 광고판에 형광불이 밝고
그의 표정도 더 없이 행복하지만
모든 체제 옹호자들의 표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광고 효과가 있을지?

무자본과 무소유 무생산의,
무정부 무시스템의
최후의 이데오로기를 실현하고 있을 뿐 저들은
노숙자라 불리지만
속히 사라져 주기를 바라지만
거기도 역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어제
도큐 한즈 옆에서
쓰레기통 뒤지는 사내들을 만났다
커다란 철제 쓰레기통 거기
머리를 들이밀고
음료수 컵만을 꺼내서
꽂혀있는 빨대마다 쭈욱 쭉
음료 찌꺼기를 빨아 마시고
과일 쥬스 컵은 빨대로, 손가락으로
싹싹 훑어서 핥아먹는 사내들
하나가 그러고 지나가면
또 다른 멀쩡한 사내가
다시 와서는
빨아먹고, 핥아먹고

그들의 사상이나 이데오로기도
결국 마찬가지일 터
사상과 이념 뿐이겠는가
거기는 맹 더위
땀 흐르는 등줄기
이들이 메고 있는 빵빵한 배낭들
자신의 생 자체에 대한 집념
이들도 결코 만만치 않다

모든 길은 상가로 통한다
쇼핑센터로 통한다
상품, 이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랄같은 맹더위 때문일까
실은 어제 토쿄의 기온이
최저 30도 최고 39.5도를 기록했다
최저 최고 모두 관측 사상
신기록이었다
평범한 시민들에겐 그저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일 뿐이고
아나고나 소바를 선전하는
NHK 테레비 교양프로의 소재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겐
보다 의미심장하다
응징과 관련 있다

모든 길은
쇼핑센타로 통한다
그리고 그
길 가마다
많지는 않지만
그런 자들이 있다
선동하고 있는

아주 조용하게
고행하는
채집 식사를 하며, 게으르며, 지저분하며
일본 막바지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체제는 맹더위와 싸우거나
공존하거나 …
동지나해로부터 불어오는 FEN
사나운 열풍
사막보다 황량한
빌딩 사이로
휘몰아치는데
그 한 골목 사구에서
불같은 햇살을 성령처럼
온몸으로 받으며
저팬의 자본주의를 “나니?”하며 농락하는
“쓰바라시이 히토”들
그런
노오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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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그대 등 뒤에 서고 싶다

 

이발소 철제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정면의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일은

고역스런 일이다

다음에 오리다 …
도 속으로 하여 보고
눈을
지긋이 …
(미안 해요오, 행복한 삶이 아니었군요
제 책임이예요)

지 머리도 지가
못 자르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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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한낮의 열풍이 가시지 않은
후끈한 밤인데요
처와 공원에서 아파트로 돌아오다가
하늘을 보았지요

보름달이 떴어요

더러 구름들 사이 투명하게
보름달이 떴어요
아파트 꼭대기 너머로
현실이 아닌 것처럼
두웅그렇게
다른 나라 달처럼

아,
내 안에 내가 세운 새로운 나라의
달이예요 저것이
가슴이 벌렁 벌렁거리데요
그 달만 바라보며
집으로 걸어왔어요

어머니,
비로소 오늘
내 안에
내 나라를 세웠어요
가슴이 마구 뛰어요

. . . .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어지러워서 비틀
넘어질 뻔했어요
한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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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랜다
 

한동안 신문이나 방송 뉴스 다 끊었는데
그래
참 편안했는데
집 안 온도가 30도도 넘는 오늘 아침
마누라가 신문을 보며
“그동안 뇌경색 같은 거 유발시키는 약들
콘택600 뭐 화콜 이런 거
정부가 이번에 한꺼번에 판매 중단 했다네요
유한양행  뭐 …”
… … .
“뭐야,
정부?!”

정부 라는 것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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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보내는 편지

 

여기
잘 지냅니다
언어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고
이 사람들 관습이나 교통법규 같은 것도
그런대로
잘 지키면서
(주로 집 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때론
나가기도 하지요)
아뭏든
여기서
그런대로
잘 지냅니다
여기 나라 깃발이나
권력자들 이름 같은 것,
이 사람들 지배 방식이나 주류 가치관 같은 것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이 사람들하고 될수록 충돌하지 않을려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여기
살만 하네요

가끔씩 이 사람들 테레비로
축구 중계도 보면서
당분간은 여기서 이렇게
지낼랍니다

그럼,
이만 …

서울,
송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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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세상에 나와 단식농성

 

아홉 시 십오 분에 출발하는
5호선 전철을 타고
집사람과 오순도순
꿈 이야기 같은 것을 하다가
광화문에서 내렸지요

집사람은 다른 출구로 나가고
나는 2번 출구
교보문고 쪽으로
계단을 올라
세상에 나왔는데
아이구, 깜짝 놀래고 말았어요

미국 대사관 주위로
제국의 식민지 수비대가
검은 복장에 긴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바리케이트를 치다시피 도열해 있고,
수비대 버스들이 그 뒤에서
대사관 건물을 호위하고 있었어요
대사관 정문을 들어가는 차들은
입출구가 양쪽으로 차단된 철망 통로 안에서
섬세한 검색을 당하고 …

이렇게 느닫없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참 두려운 일이예요

아침에
제국의 동맹군 자이툰 부대가 서울 공항에서
비밀리에 중동의 점령지로 출발하고
도하 신문 방송은 제국 연대의 엠바고로
입을 굳게 다물고

나는
물 적신 수건을 목에 두르고
문광부 옆 시민 공원
민노당 천막 안에서
단식 농성을 했지요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어요
종일 …
집사람이 오후에 잠시 다녀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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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말했다
약 80%는 임의의 소비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시장에서
꼭 필요한 것 만을
구입한다면
세계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건지,
한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건지,
그 다음에 즉,
그렇게 한 다음에는
어떤 주의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체제 전복 전술에 관한
은밀한
암시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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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

 

EBS 라디오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공개방송에 출연해서
“ …
그런데, 이제
새로운 세상에 관한 상상력이
온전히 사라진 시대가 돼 버렸습니다”
까지만 말하고
“그런 세상에서 무슨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 더 나겠습니까?”라는 말은
안 했다.

끝 인사로
오늘 느낌이 어떠신가요 묻는데,
“무슨
해외 공연하는 것 같네요”라는 말도
차마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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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올림픽 공원

 

그야말로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긴 둔덕이 있고
그 안쪽으로 잔디 광장이 있다

난 그 비탈진 잔디 광장 위쪽 듬성 듬성
소나무 숲의 긴 벤치에서
아래, 공원의 사분지 일 쯤을 관망하고 있다

몽촌토성과 큰 나무들과 그 너머 푸른 하늘과 …
오늘 하루
저 건너 세상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 그늘 아래에서
둘러앉아 뭔가들 먹거나
얘기하거나
잠을 자거나
애들하고 공놀이를 하거나들 하고
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잔디 안쪽으로 못 들어오게
저쪽 세상에서 파견된 제복 입은 자들이
종일 호루라기를 날카롭게 불어대고
내 뒤 벤치에도 그 제복이 있다

잔디 광장 끝
산책로 옆에
거대한
미류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잔가지들을 늘어뜨리고 섰고
그 전방엔 키가 크기도 큰 쌍둥이 플라타나스가
하늘 끝까지 뻗쳐 어깨동무로 서 있다

저들,
저쪽 세상에서 온 사람들은
해가 지면 모두 저 둔덕 너머로 돌아가야 한다
그 나무들을 남겨두고
그러나, 나

다시는
저 둔덕 너머로 돌아가지 않을 것
저기 저
나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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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
 

초가을
비가
한 이틀
내리더니

동네
하수구로 쏟아져 들어가는
그 빗물들도
얼마나
맑으던지 …

내 여생도 거기 함께
쓸려 내려갔으면 …

바삐 달아나는
저 맑은 물살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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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쑤 아저씨 김 씨

 

베갯잇 바꾼다고
푸라스틱 반짓고리를 열었는데
한 구석에
“김씨가 이자를 팍!!! 깎았습니다”
라고 인쇄된
메모지 반 접은 것에
조그만 바늘이 하나 끼워져 있었다

뒷면;
100만 원=20,000원X60일 --> 100만원=20,000원X56일
Tel (02)4980-XXX, 017-236-XXXX
목돈 드리고 푼돈 받는 --- 일쑤 아저씨 김씨

고마운 아저씨 …
고마운 자본주의 …
이렇게 겸손할 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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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말일 밤

 

속보로 걸어가는 땅바닥이
흑백 필름처럼
내가 마주보지 않는
마주 오는 산책객들의 얼굴들이
해골처럼

큰 길로 쐐앵 지나가는 차들도 유령처럼
달빛은 있거나 말거나

주머니 속의 핸드폰은
딴 세상 전갈을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뒷바퀴로만 굴려서 지나가는
젊은 애들의 경쾌한 자전거 묘기도
꿈처럼
아득

어둔 밤거리 배회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오히려 현실답

낼 아침 머리를 깎으러
설마 산으로야 가겠느냐

가을 밤이 다시
더워지거나 말거나

그러는 동안
나 더 머얼리 떠내려가
거나 말거나

잘 가아

담배 하나
입에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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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양
 

언제더라?
새벽 차로 여기 떨어져서
갈 데가 없어 역전 목욕탕 들어가 목욕하고
상남면 아침 들판 논길로만 헤매다
어느
술 도가 주인을 만나고, 그 동생 집
예림리 동네 목욕탕에 기식하며
새벽마다 방카씨유 보일라 불을 때던
그 밀양

강엔 웬 모래가 그리 많던지

언제나 이 작은 역을 지나면서
역사 건너편, 하행선으로 좌측을 보면
철로 가까이 검은 바위
작은 단애가 있지
오늘은
그 단애를 뒤로 하고
열차 승강장에 시골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앉아
이 무궁화호가 아닌
다른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나는 나이 들어
여기를 또 지나는구나

그 옛날 내 품 속의 사진첩을 꺼내어
이 풍경과 비교하고는
그 사진첩에 오늘 여기를 담지 않고
닫아버린다. 바위나 한 번 더 보고
그 바위에 눈 인사나 하고 떠나는
구마선 완행열차

작은 들판 건너 어느 초록의 큰 산
그 놈 중턱에 다짜고짜 허어연 터널을 뚫고
그 터널 입구를 향해 거대한 세멘트 기둥들을 세워 나가는
이 나라 국토의 대 역사를 구경하며 지나가는
무궁화호 완행 열차

이제
국토 외진 곳으로만 달리는 누추한 교통수단
단지 이 노회한 열차 안 만이 내 나라 풍경 같은데
언제였더라?

아침 나절 밀양 읍내
대가집 같은 술 도가
술 익는 냄새 황홀하던
김 오르는 항아리들
부산한 일꾼들
“아야, 니는 내하고 가자.
니 이름이 머꼬?”

그 때,
철없던 먼 세기의 그 때
생전 처음 충청 이남
먼 나라
밀양

한수라고 불리던
풋 사내의
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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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뉴욕으로

 

무궁화호에서는 4개 국어로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옛 시대
부마항쟁의 지방 도시 변방이 세계화의 철로와 연결되어


이렇게 일찍 시를 쓰는 날은 없었다. 처와 함께
처의 고향을 서둘러 떠나며
후줄근한 역전 호텔 양조식 속이 거북하여
역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더 뽑아먹고
자본주의를 혐오하며
서울이 깔아뭉개고 앉아서 지배하는 지방 도시,
뉴욕이 깔아뭉개고 앉아서
먼데서 지배하는 이따위
자본주의 최하류 계급의 역전 아래 셋집 동네를 지나

재첩국 집.
예민한 아침 손님을 맞기에는
너무 너절하고 어수선하고
떠벌레한 사투리 …
호텔로 가보자

“우리 열차 …
거동 수상자는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열차 다음 역은 진영, 진영 역입니다.”

가방을 울러 메고 지방 철도역으로 가거나
변두리 골목길을 지나거나 하는 일은 매우 운치 있다.
내가 거동 수상자 즉,
테러리스트처럼 보이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굳이 날 뉴욕의 권력에게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나의 사상을 알아보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아침부터 왜이리 불쾌한가?
저놈의 영어, 일어, 중국어 안내 방송
무료한 역무원의 소읍,
진영역 들어서는 지난 세기 고물 열차 안에서 이리도 크게
떠들어 댈 것이 무엇이람.

마산역 광장 분수대
첨단 기법 초라한 시공의 아류 예술
그 부조화한 투명 아크릴판 위론 오래된
쓰레기가 나뒹굴고
광장 중앙
어울리지 않게 키만 큰 소나무들 가지 위로
비둘기들이 마치 까마귀처럼들 앉아 있는데,
역사 주위로 아침부터 술 취한 눈빛들
떠다니는 사람들, 거동 수상해 보이는 이탈자들,
과격 반체제자들을 찾아내겠다는 듯
외지 여행객들을 노골적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다
잠시 쉬면서 대합실
모던한 시대의 모던한 철제 의자들 위에
낙후한 변방의 하류 엉덩이들을 비비적거리고 있다.


“자야,
세상에는 말이다.
상류, 중류, 하류 인생이 있다 아이가
근데 안있나, 하류 인생이 대다수 아이가 …”
“그래요? 그런데
하류 인생들은, 그 대다수의 하류 인생들은 잘 안보이던데요,
어디들 있지요?”
“씨바,
그기덜이 테레비에 나오것나, 신문에 나오것나,
동사무소 명단에나 있을라나 …”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어요.
열차 지나가는 강변의 수목이나
벼 익어가는 들판, 작은 마을들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밟히고 지배 당하는 변두리 땅의 너절함.
 
“잠시 후 우리 열차는 밀양,
밀양 역에 …
안녕히 가십시오, 해버 나이스데이”

밀양 역 접근하는 낙동강 상류
모래사장도 빈곤하고, 물 마른 하천
군데 군데, 섬들이 기괴한 풀밭을 이루는데
“코노레샤와마모나쿠 상동에키니도차쿠이타시마스”

흔타 흔타 진양 단감
아무데나 널렸구나
강둑이나, 산 아래나 심지어 세멘트 포장 논둑길 가에도

노오란 유치원생들 다시 철로를 건너고
그들의 미래를 얼핏 훔쳐보며 그 옛날
한 풋 사내의 꿈같은 객지를
무감히 또 떠나는데
산비탈 아래
<반공 시범 마을>
지난 세기의 퇴락한 간판이 왜 이리 정겨운가
구호는 완성되고, 역사가 되었기 때문인가?

열차는 청도, 청도역에 또 멈추고
나는 환기통도 없는 금연 화장실에 들어가서
창 너머를 바라보며 타임 연기 빡 빡 빨아들이고 속으로
단감이 어디 진영, 진영 뿐이겠느냐
흉내를 낸다.

청도 역 지나는 다리 아래
작은 강 한가운데 가느다란 인공 분수대
낮은 세멘트 다리 위에서 무언가 씻고 있는 사내들,
감 밭에서 대나무 바지랑대로 감을 따는 늙은 부부
지나도 지나도 아침 감나무는
진영, 어디
진영 뿐이겠느냐

무궁화 열차 높은 천정
대낮에도 부우연 형광등
광고판 달랑 하나
“누구에게나 소중한 꿈-
우체국 예금 보험이 함께 키워가겠습니다.”


굴을 지나고, 굴을 지나고
반도엔 산이 많구나
승객들은 별로, 가진 돈이 없고
광고판은 달랑 하나
소박하구나

지방도시에나 가야
옛날 양복점, 양품점, 아주 이름 없는 메이카의
가다마이, 쓰봉, 잠바때기가 있다.
색깔도 야리꾸리한 …
대도시에서 밀려난 것들
서구 메이카에 밀려난 것들
이름 없는 메이카의 옷들
마산에서도 변두리
이들의 경제고 문화다.
거기서
잠바나 하나 살껄 …


“서민들 물가를 잡아야제
라면 한 개 지금 얼매하는지 아나
우유는 얼매나 올랐는지 아나
이래가믄 몬산다.”
서민이라구요? 아,
하류 인생들을 말하는군요.

서울에 좀 더 가까이 왔다.
동대구 역이다.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여기부턴 플랫폼에서도 담배를 못 피운다.
요소 요소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
그래도, 담배 피우는 촌 것들이 있다.
아직은 변두리다.
그런 무질서에 불쾌해 하거나 그런
것으로 인한 건강 위협에 예민한 자들이 아직은
한참 멀리 있다.
그래도, 배짱 편하게 담배 빨고 싶으면
저 건너 완행 승강장 쪽으로 가라.

“열한 시 30분에 용산을 향해 출발하는 게이티액스 열차가
5번 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저씨, 오십 분에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는 어디서 탑니까.”
“저기 7번 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아예
우리의 심장부 뉴욕으로 직접 가는 열차는 어디서
탑니까 … “
 
스포츠 신문, 그렇게 큰 폰트도 있다니
고현정 배용준 …
그 이상은 모른다. 얼른 피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을 위한 국정홍보 전문지 코리아 플러스
제국의 언어가 지배하는 코리아
이쯤되면, 고졸 대통령은 참 곤혹스러울 것이다.

용산 가는 KTX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또,
떠났다.
신칸센이나 떼제베를 타본 사람들은 저것들이 얼마나
친자본적인지 알 것이다.
그야말로 미끄러진다.
광통신으로 주식 거래와 은행 잔고 이체,
햇지 펀드가 흐르듯이
선물 시장을 통해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로
북해산, 두바이산 원유가 흐르듯이
매끄럽다.

서울로 간다
대전, 아산천안 역을 경유하여
서울로 간다.
핸드폰이 부르르 몸서리친다.
“정서방이가?
시계 찾았다 아이가
책상 밑에 있드라.
잘 둘끼잉깨네 구정 지나 아부지 제사 때 내려 온나.
시계하고, 그 칼하고 그 때 가지가그라.”
 
상류 인생들이 경제 신문을 보는
KTX를 타고 그들과 함께
서울로 간다.
주요한 생산이나 거래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신속히 이동시키는 것이 KTX의 임무다. 굳이
커피 맛이 좋아야 할 이유는 없다.
미끄러지듯이 서울로 간다.

그들의 신문을 곁눈질로 훔쳐본다.
“해외로 빠져나간 개인자본
올 15조원
유학, 연수 등 8개월 집계
조선일보”
이봐요, 이건 자본 유출이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시장 개념이 고작 그 정돈가요?
당신들 입장이 도대체 뭐요?
신자유주의에 딴지 걸자는 거요?

이제 어떤 감상도, 대안의 희망도 있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 외진 도시 후미진 골목길에서 나와
중심을 향해 좀 더 가까이 간다.
보다 일상적이다. 편안해진다.
나는 누구인가.

“자이툰 부대의 새벽은 평온했다.”
이게 첫 보도인가요? 엠바고가
풀렸는가 봐요? 그래도 그렇지,
테러범들, 이슬람 놈들이 무섭지도 않아요?
시골 가는 완행 열차 안에서도 테러의 위험을 경고하는 방송이
저리 잦은데
당신들 도대체 정신 있는 거요? 영원히 엠바고 해야지
그리구, 뭐요? 탈 이데오로기 시대라구요?
천만에
자본주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지 않아요?
여성성과 평화와 절제와 생명의 가치와 선한 윤리와
반자본의 그 모든 도전들이 당신들 완강한 무력 앞에
무릎 꿇었고,
지난 수 십 세기에 걸친 당신들의 피 어린 집념으로 당신들의 이데오로기
가 이제 여기 최종 실현되고 있는데
탈 이데오로기라니요?



분노가 좀 풀렸는가?

마산역 내국인용 좌변기 화장실
화장지도,
옷 걸어놓을 못 하나도 없는
그놈의 공중 화장실
담배 빡 빡 피워가며
아침 똥 뿌직거리며
부글 부글했던 그 화가 좀
풀렸는가?

서울로 간다.
서울로

어쩌면, 동경을 거쳐
뉴욕으로
간다.

그들이 건설한 고속 레일을 따라
하염없이
간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인가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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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스스로든 아니든,
철저하게 고립돼 보고,
철저하게 소외돼 보고,
철저하게 독립해 보란 말입니다
그럼 결국 남는 것은
개인 밖에 없단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개인
수많은 개체 생명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나란 말입니다

거기선 국가든 민족이든 세계든
모두
관념이란 말입니다

어디
그럴 듯한 관념에
기대려 하지 말고
그 외롭고
당당한 존재감을
유지하세요

그제서야 비로소
당신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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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

 

정말
바닥에
갔다 온 기분이예요
거기 떨어져 한동안
기어오를 밧줄이 없어 허우적거리다가
사실
온 몸에 매달려 있는 너절한 끄나풀들을
떼어내는 그런 노역이었어요
못된 세상과의 오랜 애증의 끈들

다시,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줄 아세요?
아니예요
새로운 자리를 찾았어요
세상이 더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더 멀리 보이는
그런 한적한 자리

역사에 비상구가 있다면 그
비상구 가까운 곳에
제 자리가 있어요

그래도 가끔씩은
중얼거리기도 할테지요
떠들기도 할테지요, 혼자
또는 …


거기서
분노도, 절망도,
열정도 없이
그리움도 없이
무던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지 …

사실,
아무 때고 내키는 대로
저 혼자 열고 나갈
그런 비상구는 없답니다

거기 그냥
제가 써 붙인
글씨예요

그래도
이렇게 다시
올라왔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어머니 . .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