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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평론

노래하는 시인 정태춘

문화산업과 자율적 예술

정태춘과 밥 딜런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정태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네  ―밥 딜런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삶과 유리된 대중문화는 얇은 판막 같다. 심도深度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 자체 껍데기인 대중문화는 몸통이 빠져나간 고치처럼 가볍고 허황되다. 그것들은 가뜩이나 무게중심을 잃은 대중들의 삶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대중-주체들의 삶이 기록되지 않은 문화-텍스트들은 모순과 고통의 무수한 내러티브들을 가리고 덮는다. 그것은 죽은 자 재資材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의 명령이 가 닿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것의 정체성은 철저한 수동성이며, 시스템의 요구에 충실할 때 가장 역동적인 ‘기능’을 갖는다. 대항문화(counterculture)는 로봇화된 대중문화의 껍질 안으로 들어가 그것에 부피와 깊이를 만든다. 아무것도 담지 않음으로써 수동성을 극대화했던 대중문화가 대중-주체들의 복잡다단한 내러티브를 가질 때 모종의 사회적, 정치적 발효 현상이 일어난다. 이럴 때 대중문화는 비로소 자율적 ‘운동성’을 갖는다. 그것은 박피薄皮가 아니라 부피와 심도를 가진 공간이 되며, 그 공간에 대중-주체들의 질문과 요구와 욕망과 감성이 기록된다. 대중문화와 대중-주체 사이에 이렇게 본격적인 ‘대화’가 일어날 때, 대중문화는 고급/저급의 이분법을 넘어서며 문화의 다양한 형식 중의 하나로 존재하게 된다. 대항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체제 순응적인 문화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대항 문화 혹은 반反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한, 주류문화 혹은 지배적인 문화는 비자율적인 문화, 체제를 옹호하고 재생산하는 문화이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 Adorno)가 『계몽의 변 증법The Dialectic of Enlightenment』에서 주로 사용한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개념은 주류문화의 생산 주체가 대중(mass)이 아니라 산 업(industry), 즉 자본임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는 산업 혹은 자본이 아니라, 대중이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의 정서로 대중의 이해관계를 위해 생산한 문화를 가리켜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진 정한 대중문화는 자본에 저항하는 문화, 이윤의 메커니즘보다 대중-주 체의 삶에서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그것을 지향하는 문화를 가리킨다. 물론 우리는 다수 대중들을 자본의 메커니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 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과 이윤, 그리고 소비의 로봇이 되어있는 대 중들의 문화와 문화산업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또한 자본주의적 유통 망을 배제한 대중문화를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리하여 문화는 이윤과 저항과 욕망이 마구 뒤섞인 거대한 용광로 같다. 가장 저항적인 문화조차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유통망을 거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대항문화의 기수들은 문화산업 안에서 스스로 산업이 되어 자본 중심의 세계에 도전하는 배리背理의 존재들, 혼종성(hybridity)의 존재들이다. 밥 딜런은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세계 최강의 베스트셀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돈 덩어리’로 만든 시스템에 저항하는 주체이다. 정태춘은 1978년 첫 번째 앨범 『시인의 마을』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나 자신을 스타로 만든 시스템과 불화하고 있는 주체이다. 이런 점에서 대항문화는 자신의 자궁과 불화하는 문화이며, 집에서 떠나 아직은 ‘없는’ 집, 그리하여 앞으로 ‘도래할’ 집을 찾아가는 방랑자의 문화이다.

정태춘과 밥 딜런이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은 바로 껍데기의 문화를 부피의 문화로, 심도가 없는 문화를 두께의 문화로 만드는 부분이다. 밥 딜런은 1960년대의 미국에서 포크와 포크록을 이용하여 노래 속에 거리(street)의 삶을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말이 사라진 껍데기 문화는 언어로 비등沸騰하기 시작했으며, 대중문화의 둥지 안에서 대중의 정치 경제학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정태춘은 1980~90년대의 한국에서 자신만의 포크로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갔다. 그리하여 공허한 사랑 노래로 인식되던 대중문화는 삶의 노래로 지평을 넓혀 나갔고, 얇고 얕은 감성으로 치부되었던 대중문화는 사회, 정치적 성찰의 심도를 갖기 시작하였다. 대중문화가 자신의 고유한 부피와 심도를 가질 때, 말하자면 이렇게 자신의 오장육부를 만들어낼 때, 시스템의 투사投射를 견디거나 거부할 힘이 생기고 자율적 공간이 확보된다. 대중문화가 시스템의 얄팍한 얼굴이기를 거부하고 이렇게 몸집을 키울 때, 대중문화와 시스템 사이에 ‘비판적’ 거리가 생긴다. 이 거리야말로 그 모든 ‘자율적’ 예술의 힘이다.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 왔지

―정태춘 「아, 대한민국...」 부분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내려가야 인간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얼마나 자주 포탄이 날아가야 전쟁이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밥 딜런 「바람 속에 불고 있어」 부분

 

다만 정태춘이 서정적 주체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정치적 주체로 확산해 나갔다면, 밥 딜런은 거꾸로 사회적, 정치적 주체에서 실존적 주체로 확장되었다는 점은 다르다. 정태춘의 초기 음악은 서정적이고 실존적인 주체를 앞세우고, 배아胚芽의 형태로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태춘의 정치적 주체가 전경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3월, 제 6집 『무진, 새 노래』가 나오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밥 딜런은 20대 초 반에 첫 번째 앨범을 내면서부터 바로 저항의 상징으로 부상하였으며, 「바람 속에 불고 있어」 「배가 들어올 때」와 같은 그의 노래들은 시민운동의 ‘성가聖歌’가 되었다. 그러나 딜런은 이후 저항의 아이콘으로 규정되 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또 다른 면”을 찾아 나섰다. 1964년 딜런은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밥 딜런의 또 다른 면』을 내는데,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면”이란 정치적 주체가 아닌 실존적 주체를 의미한다. 정태춘이 실존적 주체에서 서서히 정치적 주체로 나아갔다면, 밥 딜런은 이렇게 정치적 주체에서 실존적 주체로 나아갔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 가든 그들은 실존성과 정치성이라는 두 개의 무대에서 떠나 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이 두 개의 축 사이를 왕복운동하며 내부에 자신들의 고유한 ‘기관器官’들을 확보하였고, 그럼으로써 대중문화의 독립성, 그리고 자율성의 수위를 드높이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든 간에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 안에 ‘비판 담론’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실존적 주체와 정치적 주체는 통시적 수평축에서 각기 다른 순서를 가졌지만, 둘 다 시스템의 전유를 거부하는 특수한 ‘장치’들이었다. 덕분에 시스템은 이들의 세계를 완전히 전유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생긴 거리는 대중- 주체들에게 파시즘과 자본 중심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사유를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정태춘의 ‘사회비평’의 근저에는―루카치(G. Lukács)식으로 말하면 ‘사라진 총체성’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존재한다. 루카치가 말했던 대로 ‘우리의 모든 갈 길을 비추어주던 하늘의 별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정태춘에게 있어서 ‘고향’은 가난하지만 공동체가 살아있는 유토피아이고, 그것을 상실한 현재의 공간은 일종의 디스토피아이다. 그는 디스토 피아에 버려진 유토피아니스트이다.

저 맑은 별빛 아래
한밤 깊도록 뛰놀던 골목길
그때 동무들 이제 모두 어른 되어 그곳을 떠나고

빈 동리 하늘엔 찬바람 결의 북두칠성
나의 머리 위로
그날의 향수를 쏟아부어
눈물 젖네, 눈물 젖네

나의 옛집은 나도 모르는 젊은 내외의 새 주인 만나고

바깥사랑채엔 늙으신 어머니, 어린 조카들, 가난한 형수님
아버님 젯상에 둘러앉은 객지의 형제들

한밤의 정적과 옛집의 사랑이 새삼스레 몰려드네, 몰려드네

―정태춘 「실향가」 부분

 

이 노래 외에도 「고향집 가세」와 같은 노래 역시 사라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라진 공동체에 대한 회귀 욕망을 담고 있다. 실존적 삶을 다룬 그의 노래 가운데 최고의 성취 중의 하나인 「사망부가思亡父歌」와 대중들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그리운 어머니」 같은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 역시 사라진 ‘근원’에 대한 뼈아픈 그리움이다. 이렇게 보면 정태춘의 세계는 이제는 사라져 어디에도 없는, 상상의 공동체를 찾아가는, 뿌리 뽑힌 자의 ‘오디세이아’이다.

이에 반해 딜런에게는 ‘고향 의식’이 거의 없다. 미국 중북부 미네소 타주, 히빙Hibbing이라는 광산촌 출신의 딜런은 스무 살 생일을 몇 달 앞둔 1961년 2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얼치기’ ‘촌놈’ 딜런은 뉴욕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주변에 자신을 ‘부랑자’로 각인시킨다. 아무도 그의 (사실은 평범하기 짝이 없던) 과거를 몰랐으며 그는 밑바닥 인생을 거칠게 전전해 온 어린 ‘떠돌이’로 인지되었다. 부랑자 이미지는 이후 평생 딜런을 쫓아다니는 브랜드가 된다. 그의 노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은 떠돌이, 건달, 부랑아들이다. 2005년 마틴 스코세이지(M. Scorsese) 감독이 발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없네 No Direction Home」는 무려 네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을 통해 밥 딜런의 예술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없다’는 말은 도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밥 딜런에게는 ‘회귀’의 목표란 없다. 그에게 있어서 집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공간이다. 벤 지아모 (B. Giamo)의 지적대로 “만일 그가 어딘가로 돌아간다면, 그곳은 풍요 로운 의미에서의 개방성(openness), 비결정성(indeterminacy)이다. 그것은 홈커밍(homecoming) 처럼 안정되고 친숙한 어떤 것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가능성, 재발명(reinvention), 존재(being)와 되기(becoming) 사이의 논쟁으로의 회귀이다”. 이런 점에서 딜런은 스스로 부랑자가 되어 고정된 정체성을 부정하며 끊임없는 ‘되기’의 도정에 자신을 밀어 넣은 유목민 (nomad)적 예술가이다.

밥 딜런과 정태춘이 실존적 고뇌의 끝에서 마주친 것은 ‘초월성’이다. 이들은 결국 모든 진실한 사유의 ‘끝장’이 다름 아닌 신 혹은 초월성에 대한 것임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친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정태춘이 보여 준 최고의 성취는 「탁발승의 새벽 노래」이다. 이 작품을 통해 정태춘은 삶이란 궁극적인 의미에서 ‘고행’ 혹은 ‘고해苦海’를 건너가는 과정이고, 그 끝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 는 불교적 사유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밥 딜런은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기독교적 메시지를 자신의 노래에 산개散開시키고 있다. 그는1979~1981년, 즉 평론가들이 “가스펠 시대(Gospel Period)”라고 부르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기독교의 ‘전도사’로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데뷔 초인 1961년부터 가스펠 시대 이전인 1978년까지 자신의 노래에 무려 89번이나 기독교 성경의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그 모든 실존적, 정치적 담론의 근저에 신학적 사유가 깔려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 포크 가수로 알려져 있는 밥 딜런은 실제로 포크에서 출발 해 포크록, 록발라드, 블루스, 하드록, 시시엠CCM 등 서양 대중음악 의 거의 모든 장르를 건드리며 끝없는 변신을 해왔다. 정태춘은 한대수, 양병집 등을 잇는 포크 가수이지만 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한국적’ 포크를 지향해 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밥 딜런은 때로 표절의 혐의를 받기도 할 정도로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자신의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 다. 이에 반해 정태춘은 일상 속에서 자신이 느낀 정동(情動, affect)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그 탁월한 성취를 우리는 그의 「사망부가思亡父歌」, 「92년 장마, 종로에서」 같은 작품에서 발견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주요 멤버들은 문화산업의 개념을 중심으로 대중문화의 ‘자율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정태춘이나 밥 딜런과 같은 대중음악가들은 소위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자율적 예술과 비자율적 예술의 구분이 성급한 이분법임을 잘 보여 준다. 내가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 가 사는가』(2018)의 ‘머리말’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중문화는 문화산업의 단순한 소비 상품이 아니다. 대중문화는 소위 ‘고급문화’와 달리 현실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으며, 결핍의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중-주체들의 정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은 때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조작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자본의 환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유토피아 욕망의 무의식적 표현이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에는 현실에 대한 대중의 복잡다기한 애증이 화인火印처럼 찍혀 있다. 그것은 불덩이처럼 뜨겁고 아프고 허황되며 진실하다”. 밥 딜런과 정태춘의 음악은 이 “뜨겁고 아프고 허황되며 진실한” 매체가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율적’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례이다.

오민석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 기념 신인상에 시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 예에 문학평론 당선. 시집으로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서 『현대 문학 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대중문화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서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이 있음. ‘부석 평론상’ 등 수상.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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