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과 불계공졸
정태춘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로 거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불후의 명곡> 무대에서 한 시대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가수이다. 지난 세월 나는 답사를 다닐 때면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와 그의 아내 박은옥의 <회상>을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들으며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같이 하였다. 그의 노래에는 짙은 서정과 사려 깊은 서사가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고 매력이고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전 그가 홀연히 내게 붓글씨 작업을 보여주었을 때 정태춘의 운율이 마침내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태춘은 모든 것을 독학으로 홀로 이룬 것이지만 언제나 마음의 은사는 있었다. 시는 신경림, 정신은 백기완 선생을 사숙(私塾)하였는데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조형 정신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추사는 말했다. 내 마음을 다했으면 ‘잘 되고 못 되고를 따지지 않는다.’ 정태춘의 붓글씨에는 그런 ‘불계공졸(不計工拙)’의 미학이 있다.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노래 절필 시기에 풀어냈던 정태춘의 "붓으로 쓴 노래"
새로운 질감과 표정의 육필들, 사진 위에 얹힌 사진 붓글들
그 실물 관람과 이벤트
관람객 "붓글 체험'
나의 육필로 나의 말, 나의 이야기를 쓴다"
<정태춘과의 대화>
시각 서사의 새 지평을 여는 정태춘 붓글
문학과 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의 예술은 ‘붓글’을 통하여 시각예술로 확장한다. 그의 노래가 가진 서사와 서정이 모필과 종이와 먹의 세계를 만나 또 다른 울림을 펼치는 것이다. 그의 붓글은 흰 종이와 검은 먹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포장지나 인쇄물 또는 자신의 사진 위에 붓글을 쓰거나 합성하는 방식으로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을 추구하며, 때로는 그림과 글을 한 화면에 담아내기도 한다.
정태춘 붓글의 특징은 자기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지어낸 노랫말을 불글로 펼쳐내는가 하면, 일상에서 대면하는 대상과 장면과 사건들을 잔잔하게 녹여낸 시어들을 붓글로 풀어낸다. 일상과 역사, 현실과 판타지, 서정과 서사, 풍자와 비판 사이에 걸친 그의 붓글을 통하여 우리는 음악적 형식과 만났을 때와는 다른 차원에서 정태춘의 문학적 성취를 음미할 수 있다.
우리는 멜로디와 리듬과 노랫말 등 청각 이미지로 이어지는 정태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잔잔한 시각 이미지를 연상하곤 한다. 음성 언어로 이뤄진 노래 중심의 예술을 시각 언어로 펼쳐내는 붓글은 그의 예술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돕는다. 정태춘 붓글은 자기완결적 구조를 가진 자신의 노래를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청각과 시각, 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통하여 시각 서사의 새 지평으로 그의 예술을 확장한다.
- 김준기 (미술평론가)
자유다
위대한 음유시인의 글씨는 한줄기 빗소리였다.
무엇보다 자유다.
비는 그 어떤 구속 없이 자유롭게 땅으로 내달려 마침내 스스로 부서진다.
그러나 날카로운 파편은 보이지 않고, 강으로 흐르고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러 더 큰 자유를 얻는다.
좋은 글이 곧 좋은 글씨가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자신의 글, 자신이 지은 시를 글씨로 옮기는 것은 숭고한 작업이다.
그 안에서 비로소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고,
글의 강, 글씨의 바다에서 노닐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 말이다.
정태춘 선생의 붓글에는 스스로 지은 시와 노래가 있다.
글씨가 깨어 일어나 시를 읊고 노래를 한다.
형식과 법에 구애됨이 없이 빗물처럼 굽이굽이 자연스레 흐르고 있다.
그것은 자유다.
그래서 마냥 좋다.
- 영묵 강병인 (캘리그래퍼)
"초등학교에서 한글 서예를 배우고 난 후 마냥 붓글씨가 좋아서 지금도 붓으로 쓰는 일을 즐기고 있다."

<붓글>__
정태춘은 지난 15년 여 전, 노래 창작을 일체 중단하고 <가죽 공예>와 <사진> 작업에 몰두하다가 우연히 붓과 한시를 접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노래를 통해서 해 왔던 이야기들을 <붓글> (붓으로 쓰는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글은 다양한 시적 단상들을 시적 어법으로 축약한 한글 단문들과 한시들이며, 글씨는 주로 붓과 먹으로 쓰면서 서예적 조형에 가깝지만 캘리그래피 같은 자유 분방한 생동감의 구현을 지향합니다.
그간의 작업들__
이 작업 결과물들은 지난 2019년, 50 여 미술가들이 진행한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전 “다시, 건너간다” (세종문화회관 제 1 전시장)>에서 20 여 점을 선보인 바 있고, 전국 순회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20 여 지역의 대공연장 로비 등에서 공연과 함께 전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부론의 남한강변에서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강촌농무(江村濃霧)> 시리즈,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문명을 비판하는 <반산(反産)> 시리즈, 송파에서 살던 시기 일상 속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송파한담 (松坡閑談)> 시리즈 중 일부를 선보였습니다.
작업은 차차 한시에서 한글 쓰기로 집중하게 되었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 위에 글씨를 얹히는 작업으로서의 <사진 붓글> 작업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5년 여 전, 마포로 이사하면서 <강촌농무> 시리즈는 중단, <마포한담> 시리즈와 노래 가사나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노래>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 내용들의 일부가 2019년 봄부터 1 년 여 <경향신문>에 연재되었습니다. 또, 작품들 중 일부를 온라인 블로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개해 왔고 최근에는 카카오 브런치 등에 올려 왔습니다.
2025’ 프로젝트__
이런 작업은 그간 상당히 많은 육필의 시적 텍스트들을 축적하게 되었고, 2022년에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되면서 그것들 중 일부가 새 노래들로 작곡되었습니다. 이 노래들 중 10 곡이 2025년, 그들 부부의 신작 앨범으로 공식 발표될 예정입니다.
소속 기획사는 11년만의 신보 앨범 발표를 계기로 <정태춘 박은옥 문학 프로젝트 “노래여, 벽을 깨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앨범 발매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붓글> 작업 전시와 함께 하는 붓글 모음 책, 새 노래 가사와 새 시들을 묶은 <노래 시집> 등 몇 권의 단행본이 나올 것이고, <정태춘 박은옥 전집 LP> 출반 구상과 함께 다시 전국을 순회하는 새 <콘서트>를 진행할 것입니다.
그 일환의 <붓글 전>__
기획사에서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태춘 붓글 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여러 시리즈 작업 중 <노래>에 집중하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그간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곡들의 가사, 노래에 관련한 단상들을 붓글씨로 풀어내고 또, 사진 위에 그 글씨들을 앉힌 <사진 붓글>들, 일반적이지 않은 오브제 위에 쓴 작업들도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서예, 캘리그래피, 붓글..__
정태춘의 <붓글>은 주로 서예 붓을 쓰지만 <서예>는 아닙니다. 또, 주로 필획의 조형에 집중하는 캘리그래피도 아닙니다. 붓글은 소소한 일상사에서 나오는 가벼운 이야기에서부터 현대 문명 비판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면서 다양한 서체로 그 만의 자유로운 필법을 구사,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업입니다. 그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붓으로, 글로 풀어내는 일입니다.
이 작업이 기존의 캘리그래퍼들에게는 ‘손 글씨’로 어떤 ‘이야기’들을 더 펼칠 수 있을지, 글씨의 미적 감각만이 아니라 손글씨를 통해서 문학적, 지적 대화가 또 어떻게 가능한지 한 단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며, 최근의 <디카시>(디지털 카메라 사진에 짧은 시를 캡션처럼 붙이는 작업)를 하는 분들에게는 사진과 글을 별도의 면이 아니라 한 면 안에서 조합하고 거기 작가 자신의 글씨로 풀어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일반 독자 관객들에게는 붓글씨 필획의 표정이나 개성과 생동감, 그것들로 이루어진 메시지, 또 그 글들과 사진 영상이 조합된, 새로운 시각적 설득력으로 풍부한 감성 체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엔 <노래> 이야기__
특히, 이번 전시 주제는 <노래>로서 그의 가사 등을 담은 붓글씨와 사진 영상으로 애초 ‘음악’을 기반으로 했던 그 만의 문학적 언어의 울림이 글씨와 사진이라는 시각 작업을 통해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시 “노래여, 노래여”__
정태춘의 노래는 시이며 문학입니다. 그는 이번 새 노래들을 통해 가사의 문학적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고 새 앨범을 통해 확실하게 문학의 바다로 나왔습니다. 이 <붓글 전>은 그의 노래와 문학의 시각적인 확장과 변주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오랜 기간의 사유와 창작, 그 축적물들의 풍부한 울림을 전하는 시적인 전시가 될 것입니다.
2025년 봄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