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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쓰는 노래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내용을 이곳에서 공유합니다.

원문보기: 경향신문 오피니언 "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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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마라 | 600×300 | 초배지에 먹 | 2019

天無二日(천무이일) 
國無二民(국무이민) 
하늘에 두 해 없고 나라에 두 백성 없다

공자 왈. 천무이일(天無二日), 그것은 진리다. 뒤엣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배치된 말이다. 그다음 말로 국무이군(國無二君), 나라에 두 임금 없다 하니 그것도 그때로서는 못할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 말도 버려진 말이 된 지 오래고 민이 군을 뽑고 군이 민을 섬긴다고 하는 세상이다. 섬긴다면 차별 없이 섬겨야지, 세계 어디서나 차별이 극심하다. 어디 누구는 그러려니 하고 어디 누군가들은 처참하다.

새해 벽두, 달콤한 덕담보다 비명 소리를 전하는 것이 절실한 아, 대한민국….

이 땅에서 차별받는 모든 이들 복 받으소서.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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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무도(深山無道) 

깊은 산, 길 없다 
 

가자, 저 산

장엄하구나

가자, 저 산

고요하구나

가자, 거기 길 없는 골짜기 물소리 있고

야생초 싱그런 풀밭도 있으리니 

깊은 산 사람 발자국 없고 

길 없으면 또 저들의 문명도 없으리니 

가자, 저 산 

깊은 산

2020. 1. 15

가자, 저 산 | 470×430 | 초배지에 먹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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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시다”라고 추켜세워질 때, 짐짓 겸손을 표해야 하나 노래 속의 텍스트를 목소리로 풀어내는 가수의 속내에는 저런 것이 있다. 문학도 시도 아닌 또 다른 무엇. 

그러나 전제는 그 텍스트들의 의미를 한껏 부풀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텍스트가 음악 속에 묻혀버렸거나 현란한 음악의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했을 때, 그건 또 말장난이 된다.

노래들 속의 언어가 사라졌다. 노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노래는 더 이상 이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할까…. 

2020. 1. 29
 

노래는 시다, 라는 | 750×390 | 초배지에 먹, 동양화 물감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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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邇輝吾頭頂上 

不知此亦星中一 

“별은 가까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여기 또한 그 별들 중의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몇 해 동안 오며 가며 지내던 원주 작업실에서 쓴 글이다. 거기서 참 많은 글들을 썼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나와 만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난다는 것. 자연 아니, 우주 공간. 비록 또한 나의 눈으로 보고 만나는 새로운 세상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상상과 사유는 달라진다. 그리고, 무슨 깊은 통찰이 없더라도 그 시간들은 ‘고요함’으로 내게 보상해 준다.

그 작업실을 지난주에 비워주었다. 내게 장기 임대해 주었던 마을에서 매물로 내놨기 때문이다. 

거기 고적한 강변 펜션의 짐들을 서울 한복판으로 다시 끌고 들어오다니….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그 공간과 시간을 다시 만드는 수밖에. 형편 되는 만큼…. 

2020. 2. 12

별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 700×690 | 화선지에 먹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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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적설

 

북으로 흐르는 강변 갈대밭 

하얗게 하얗게 눈이 쌓인다 
 

종일 인적이 없다. 외진 펜션 현관 앞까지 고라니들이 더러 다녀가고 멀리 강변 갈대밭에 눈이 쌓인다.

펜션 거실에서는 일 없는 사내가 오후 내내 창가에 서성이다가, 붓글씨 몇 자 쓰다가, 그 적요를 깨는 요란한 색소폰을 한참을 불다가, 어두워지기 전 현관을 나와 차에 올라 북쪽 도시 서울로 돌아간다. 그 좁은 도로 위의 차 바퀴 자국을 천천히 하얀 눈이 지우고 펜션도 다시 차갑고 고요해진다. 또, 몇 년 전 이야기다.

 

올겨울, 서울에 눈이 얼마나 왔던가. 오래오래 소란한 겨울 도시에 눈 대신 바이러스의 불안이 쌓이고 있다. 이번 것은 얼마나 오래갈 것이며 그다음 것은 언제 또 올 것인가. 이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에..

2020. 2. 26

북으로 흐르는 강변 갈대밭| 330×450 | 화선지에 먹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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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 | 650×350 | 화선지에 먹 | 2018

勿出夕江邊(물출석강변) 
傷心月與風(상심월여풍)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 
달빛 바람에 마음 다쳐요
 

코로나19 사태가 한참인데 너무 한가한 얘기일까, 언젠가 광나루 건너편 물가에서 달 떠오는 강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녁 강변은 더없이 한적하고 스산한 바람이 키 큰 갈대 숲을 흔들고 있었다.

그 너머 멀리로 인간의 거처 시멘트 건축물들이 공제선을 형성하고 있고. 내가 여기에 왜 나와 있을까, 나는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사유체일까, 그 존재감은 왜 이리 쓸쓸할까…. 그 뒤, 다시는 저녁 강변에 나가지 않았다.

요즘 거리에 사람이 줄고 특히 노인들 만나기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도 가능하면 집 안에 머물고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도 미룬다. 하여, 처음 등장한 용어 ‘사회적 거리 두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야 실감이 덜하겠지만, 모두 고립감 같은 것들을 느낀다고 한다. 답답함과 함께. 

그러나 행여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시라. 거기 더 사람 없고, 문명의 우울까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202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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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벼루를 얻었네 | 690×350 | 화선지에 먹 | 2019

廣硯滿充磨墨水(광연만충마묵수) 
小舟解繩出何海(소주해승출하해)
幼年野端其淺海(유년야단기천해) 
乘舟仰天托風乎(승주앙천탁풍호)
 
넓은 벼루에 먹물 갈아 가득 채우고
작은 배 줄 풀어 어느 바다로 나갈거나 
어린 시절 들판 끝 그 얕은 바다
배에 올라 하늘 바라보며 바람에 의탁할거나

산업문명은 인간을 집단화하고 조직화한다. 공장, 공단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그리고 사무실들, 문화시설들…. 그게 도시다. 거기서 벗어난 인간은 산업 인력이 아니거나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다. 문명은 개인이 혼자 있을 때에도 모바일이든 컴퓨터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라고 한다. 무선 통신의 첨단 미디어와 플랫폼들을 통해 대량 소비를 위한 집단 취향을 만들어내고 끝없이 소비하고 생산하게 한다. 

산업문명에서 독립적인 개인과 자유인은 없다. 집단화된 문명에 성찰과 지성은 없고 트렌드와 팬덤만 있다.

거기에 수시로, 문명이 백신도 치료제도 준비하지 못한 신종 전염병의 재앙이 덮친다.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크게 타격당한다. 생계를 위협당한다. 코로나19로 작금, 그 문명의 일부가 멈춰섰다. 잠시.

이제 그만 재앙이 잦아들기를…. 속히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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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노멀’이라고 한다. 이걸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코로나19 사태 70여일.

대개의 국경이 봉쇄되고 대개의 시민들이 집 안에 격리되고 그간의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사회적 교류가 중단되었다. 문화 예술, 철학…. 세계의 모든 상상력과 사변들이 깊은 침묵에 빠졌다. 언제 복구될 것인가?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보다 적은 타격으로 짧은 터널의 끝을 보는 듯하지만 어떻게 다시 악화될지 알 수 없다고 하고, 전 세계 의료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인류는 참담한 지경에 빠져들었다. 상황이 얼마간 호전될 수는 있어도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산업 문명의 분기점일까? 무슨 깊은 성찰과 대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저 지난 세기의 국경 안에 갇힌 무력한 시민들이, 집 안에 격리된 인간들이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의 정부들이 시민들을 구해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국경 없는 세계를 무소불위로 통솔하던 산업과 자본은 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손실 계산만 할 뿐, 수수방관 중인데.

제발, 우리가 이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기를, 인간들이 이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속히 벗어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우울한 우리들의 문명.

2020. 4.  8

숨어 버릴까 | 450×350 | 화선지에 먹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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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빛 | 625x340 | 화선지에 동양화 물감과 먹 |  2013'

코로나19와 뉴 노멀.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들 말한다. 그건, 물리적 거리 두기와 감염 위험의 상존을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나도 매사에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 수도 있다.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의 연속적인 공격 말이다.

자연계에서 인간을 특별히 의미부여하고 그들의 이제까지의 삶의 양식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인간의 삶과 문명은 생각하기 끔찍하다.

인간은 더 성찰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보다 염치없고 더 야만적이어서는 안된다. 그 성찰로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그보다 더 나은 나라, 나은 세계를 꿈꾸고 만들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총선으로 정치 영역도 새 판이 짜여졌다.
 

“저길 봐, 파아란 빛

하늘이 열리고 있어

우린 모두 그 쪽으로 가고 있어.”
 

낙관론자는 아닐지라도 우리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 자주 낭송하는 희망의 인사이다.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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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曰, 半讀千字 半開心門(아왈, 반독천자 반개심문)
妻曰, 讀五百字 風增二倍(처왈, 독오백자 풍증이배)
내가 말하기를, 천자문 반을 읽으니 마음의 문이 반이 열리네
처가 말하기를, 오백자 읽더니 뻥이 두 배로 늘었네

코로나19가 얼마간 잦아들어 골라낸 글이다.

한문 공부를 하겠다고 천자문을 펜으로 쓰기 시작했고, 붓을 잡거나 한시를 쓰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그냥 한문을 좀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한시가 나오게 되었다.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천자문 반쯤 쓰고 그걸로 한시를 쓰리라 작정한 바는 없었다는 말이다. 정말 그냥. 장난 삼아…. 지금의 한시도 뭐 대단히 깊어진 바 없지만 저런 농담도 할 수 있어서 그 재미로 또 주욱 써 왔다.

그런데 2020년 봄이 되어 세상이 심각하게 달라졌고 모두 이런 가벼운 농담도 함부로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 거기에서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유쾌한 농담으로 서로의 근심이나 긴장, 우울을 덜어내 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세상엔 농담이 필요하고, 나도 농담을 좋아한다.

“추 선생님, 뻥을 한자로 뭐라 하면 됩니까?” “허어, 풍이지요 뭐…. 바람 풍.” 이 가르침도 농담이었을까.

2020. 5. 6

아왈 처왈 | 600×640 | 화선지에 먹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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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어디 있을까 | 600×320 | 화선지에 먹 | 2019'

不求利之生(불구리지생) /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삶
吾心何處在(오심하처재) 其在彼風內(기재피풍내)
其風何處去(기풍하처거) 吾不欲知之(오불욕지지)
내 마음 어디 있을까, 그것 저 바람 안에 있지
그 바람 어디로 가나, 나 그것 알고 싶지 않다네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런 삶을 살지 않지? 그건 욕망 때문이지.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내 안 그리고 바깥의 자극과 선동으로부터 오지. 어느 쪽이 강력할까?

물론, 바깥의…

산업 문명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욕망 자극과 선동으로 연명하고 확장한다. 어떤 연유로든 산업 문명이 와해되고 필수 생산과 필수 소비만 가능한 세계가 도래한다면? 이렇게 욕망이 확장된 인간들은 견디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산업의 그물망 바깥에서 유유자적의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문명은 그들을 배제하고 그들은 배제된 자유와 고요를 누린다.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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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410×210 | 화선지에 먹 | 2020'

何生平生問(하생평생문)
何人不如此(하인불여차)
어떻게 살 것인가, 평생 묻네
누군들 이러하지 않겠는가

나는 거의 전통사회의 시골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전기도 없고 일상에서 화폐 유통도 드물던 시대. 이후 급속히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청년기에 도시로 나왔다. 그래서, 집 전화 신청을 하고 2년여를 기다려야 개통되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과 무선 네트워크, 다시 탈현금의 초현대에까지 왔다. 또, 강고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풍미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하나도 없는 시대에까지 왔다.

 

고등학교 때 나하고 가까웠던 한 친구는 고향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나이 들어 거기 면장을 했고, 퇴직을 해서 지금도 그 고향에 살고 있다. 그도 나와 같은 세상의 급속한 변화와 그 혼란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나, 나는 그가 부럽다. 그는 아마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나보다 조금은 덜 고민했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말하면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게 뻔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가 무척 부럽다.

우린 너무 많은 시대를 살았고, 그것으로 피로하다.

그런데, 작금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인간이 서로 철저하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 불안 공동체, 문명의 위기 앞에서 노년은 가장 취약하고 피로하다.

2020.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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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불을 놓아’ 가사 중에서 | 1200×340㎜ | 모조지에 먹 | 2019

한 십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 공연장에서 ‘윈디시티’라는 밴드와 함께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경쾌한 레게 리듬이 나를 무대 옆으로 이끌었고 기분 좋게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 그런데, 노래 사이에 드럼 연주자가 느닷없이 “농사를 지어, 농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랐다. 그 얼마 뒤에 다시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정말 농사를 짓는가 물었고, 그는 충청도 어디선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놀랐고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요즘 도연명의 시를 읽고 있다. 그는 41세에 귀향하여 남은 생을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 귀향, 귀촌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다. 세상의 허명에 연연하지 않고, 시장에서 이익을 구하지 않고 흙 가까운 곳에서 소박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남겨진 작품들로 보아 도연명은 힘들지만 자족한 여생을 지냈던 것 같다. 부디 윈디시티의 저 김 반장도 아직 거기서 잘살고 있고, 음악과 더불어 농사일로도 행복하길 기원한다.

나도 평택… 늘 그 들판과 물가를 몽상한다.

2020. 7. 16

<경향 신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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