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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가는 시내 버스] 가사, 사진

김태성 사진

서울역 이씨                    _정태춘 노래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치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나간다

통곡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 처럼 사라져 주듯이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_2005.12

저녁 숲, 고래여                    _정태춘 노래 

 

겨울 비 오다 말다, 반구대 어둑 어둑

배 띄우러 가는 골짜기 춥고

사납게만 휘도는 검은 물빛 대곡천

시끄럽게 내 발길을 잡고

다만 어린 고래여, 꿈꾸는 고래여

거기 동해로 가는 길은 어디

어기야 디야, 깊고 푸른 바다

어기야, 그 망망대해... 

나의 고래는 이미 물 아래로 떠났을까

태고의 바위들 굳게 입 다물고

그의 체크 무늬 모자 위 차가운 비 그치고

“허어... 그 배를 볼 수가 없군요”

아, 어린 고래여, 나의 하얀 고래여

우리 너무 늦게 도착했나

어기야 디야, 깊고 푸른 바다

어기야, 그 백척간두... 

먼 세기 울산만의 신화도 아득하고

소년들의 포구도 사라지고

문 닫힌 컨테이너 그 옛날 매점 간판만

숲으로 가는 길을 막고 섰네

다만, 어린 고래여, 꿈꾸는 고래여

붉은 산호들 춤추는 심해는 어디

어기야 디야, 저녁 숲 속의 바다

어기야, 거기 서 있는 고래여...거기 문득, 서 있는 고래여_2010.12

강이 그리워                    _박은옥 노래 

 

강이 그리워, 네가 그리워 

그와 함께 낡은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지

계곡 물엔 단풍잎들이 헤엄치고

은어 떼들 산으로 오르는 꿈을 꿨어

구례 읍내 하늘 나지막히 노을 꽃 피고

산은 벌써 가을 햇살 툭툭 털어내는데

저 바람 자유자재 오, 정처도 없이

찰랑대는 물결, 모래 위를 걸어가는

강이 그리워, 네가 그리워

저문 날 네 노래 들으려 여기까지 왔지 

 

너는 가늘게 반짝이며 밤 바다로 가고

네가 떠나간 여울목에 다시 네가 있는데

산은 여기저기 상처난 길들을 지우고

가난한 시인네 외딴 빈 집 개만 짖는데

강이 그리워, 네가 그리워

그치지 않는 네 노래 들으려 여기 왔지

_2010.12 

꿈꾸는 여행자                    _박은옥 노래
 
고비 사막에서 날아온 엽서 한 장
메마른 글씨들만 흩날리고
어린 낙타를 타고 새벽길을 떠나
그대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창의 커텐을 열고 잠시 묵상 중이예요
여긴 너무 멀고 먼 샹그릴라
치즈와 차와 술과 노래 소리들
더 이상 외로운 여인들은 없죠
어느날 여행자들이 찾아와    구슬픈 바닷 새들의 노래를...
사막이 끝나는 높은 모래 언덕,
멀리 황홀한 설산들이 손짓해도
부디 그 산을 넘지 마, 넘진 마세요
그 너머에도 바다는 없죠
 
어느 밤, 차가운 별들의 시내를 건너시면
그 푸른 빛을 여기 띄워주시고
행여 별빛 따라가다 바달 만나도, 부디
거길 건너지는 마세요
또 어느날 여행자들이 몰려와   또 다른 세계의 달빛 노래를...
그대의 샹그릴라는, 음 어디
지상에서 누구도 본 적 없고  
세상 끝 바닷가 작은 모래톱 만나면
거기 누워 길고 긴 꿈을 꾸세요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
꿈꾸는 그대, 그리운 여행자
_2010.07
 

 

섬진강 박 시인                    _정태춘 노래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 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 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 비는 오고 지랄
십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 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 바람이 화개 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 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 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 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 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그 누가 날 부릅디까, 적멸 대숲에 묻고
양지녘 도랑 다리 위 순정 편지만 쓰더라
_2010.12

눈 먼 사내의 화원                    _정태춘 노래
 
날아가지 마, 여긴 그의 햇살 무덤
너희 날갯짓으로 꽃들을 피워주렴
아무도 볼 수 없는 그의 영혼처럼
이 화원 누구도 본 적 없지
떠나가지 마, 강변의 나비들이여
너희 명랑한 그 날갯짓 소리 그치면
풀잎 그늘 아래 꽃잎들만 쌓이고
그는 폐허 위에 서 있게 될걸
오, 눈 먼 사내의 은밀한 화원엔
오, 흐드러진 꽃 춤추는 나비 바람
 
날아가지 마, 여긴 그의 꿈의 영지
모든 휘파람들이 잠들고 깨이는 곳
누구도 초대할 수 없는 새벽들의
단 한 사람만의 고요한 늪지
떠나가지 마, 맑은 아침 나비들이여
옅은 안개 이슬도 꿈처럼 사라지면
거기 은빛 강물 헤엄치던 물고기들그
의 화원 위로 뛰어 오를 걸
오, 눈 먼 사내의 은밀한 화원엔
오, 흐드러진 꽃춤추는 나비 바람 
_2010.08

바다로 가는 시내 버스                    _박은옥 노래
 
몇 시일까, 겨울 비 내리는데   썰물처럼 가로등 불빛 꺼지고
아무도 떠나가지 않을 정류장   시내 버스 모두 돌아오고
그 얼마나 먼 곳으로 헤매었니   이제 여기 변두리 잠시 닻을 내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 종점 역   그리움에 병 들었을 너
모든 시계들이 깊은 잠에 빠져도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
여기 끝 모를 어둠 깊어진대도
누군가 또 거기 작은 배를 띄우고
며칠일까, 오늘과 내일 사이   겨울 비 그치고 별이 뜰텐데
다시 떠날 차가운 아침 조용히   너의 바다 또 널 기다릴텐데
 
그 얼마나 먼 곳으로 헤매었니    네가 찾는 바다 그 길 끝에서 만날까
아무도 손 흔들지 않는 등대 아래   하얀 돛배 닻을 올리고 있을까
모든 시계들이 깊은 잠에 빠져도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
여기 끝 모를 어둠 깊어진대도   누군가 또 거기 작은 배를 띄우고
며칠일까, 오늘과 내일 사이    겨울 비 그치고 별이 뜰텐데
다시 떠날 차가운 아침 조용히    너의 바다 또 널 기다릴텐데
_2010.12
 
 

 

날자, 오리배...                    _정태춘 노래
 
새벽 옅은 안개 걷히기 전, 보문호에 가득하던 오리배들 떠나갔다
벌써 영종도 상공 또, 단둥 철교 위를 지나 바이칼 호수로 간다
길고 아름다운 날개짓, 부드러운 노래로 짙푸른 창공을 날며
거기서 또 수많은 오리배 승객들과 인사하고 멈추었다 날아간다
비자도 없이 또, 국적도 없이 그 어디서라도 그 언제라도
얕은 물 가에 내려, 그 땅 위에 올라가 일하고 그 이웃들과 하나 되리라
 
굳센 바이칼의 어부들, 인근의 유목민들이 그들 오기 기다리리라
이젠 거길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의 오리배로 에게해로 떠나리라
자작나무 숲의 어린 순록들이 작은 썰매를 끌고 와 그들을 영접하고
저녁 호숫가 잔디 위 따뜻한 모닥불 가 유쾌한 만찬이 있으리라
비자도 없이 또, 국적도 없이 그 어디서라도 그 언제라도
맑은 물 가에 내려, 그 땅 위에 올라가 일하고
거기 경건한 숲들과 하나 되리라
 
해질 녁, 에게해 진흙 바다 오래된 말뚝들 사이 그들이 또, 내리리라
오후 내내 레이스를 뜨던 여인들과 귀가하던 남정네들 그 바닷가로 나오리라
그날, 거기 일군의 오리배들 탕가니카로 떠났고 집시의 선율들은 남아
마을에 저녁별 질 때까지 그들의 창 가에 와인 향처럼 흐르리라
비자도 없이 또, 국적도 없이 그 어디서라도 그 언제라도
얕은 물 가에 내려, 그 땅 위에 올라가 일하고 그 별들과 하나 되리라
 
그들 또, 아프리카 호숫가 작은 샛강에 내려 거대한 일출을 보리라
주린 채 잠들지 않고 총성에 그 잠 깨지 않고 아이들, 새벽 강물을 마시리라
늙은 기린들도 뚜벅뚜벅 그 물 가로 모이고 밀림의 새들은 날고
세계 어디에도 이들보다 흠, 덜 행복한 사람들은 없으리라
비자도 없이 또, 국적도 없이 그 어디서라도 그 언제라도
맑은 물 가에 내려, 그 땅 위에 올라가 일하고 그 대지와 하나 되리라
 
그날 또, 일군의 오리배들 티티카카 호수에 내리리라
그 수초의 섬 위로 오르리라
거기 또, 오리배들
정오의 하늘에 가득하리라
_2010.12

헌정 트랙 /  92년 장마, 종로에서                    _정태춘 박은옥 노래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의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워...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빨간 신호등에 멈춰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훨... 훨...
_1992.06
 
 
 
 
 

 

정태춘 작사 작곡,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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