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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춘 박은옥 트리뷰트 전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문명 이탈의 상상에 바치는 연대의 마음       

                                                                                                                                    

 

정태춘 박은옥은 서정과 저항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예술가이다. 그들은 낭만적 서정을 가진 음유시인이며, 비판적 성찰의 저항 예술가이자,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액티비스트이다. 그들은 70년대의 암흑기에 청춘의 꿈을 꾸었고, 80년대 이후 삶의 낭만을 이야기 했다. 1987년을 전후해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의 이상향을 노래하던 그들은 ‘우리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지금 여기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하나둘 광장을 떠나기 시작하던 그 시절, ‘건너간다’라는 노래로 시대의 절망을 낮게 읊조렸다. 21세기 문명 전환의 시기에 그들은 ‘첫 차를 기다리며’ 우리들에게 그래도 놓지 못하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이후 긴 침묵을 깨고 다가와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희망을 건져 올리려는 사람들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두 예술가의 30주년을 맞아서 열리는 콘서트를 계기로 그 삶과 예술을 비추는 낮은 음성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전시 [정태춘 박은옥 트리뷰트 :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는 정태춘 박은옥 30주년을 맞아 그들이 걸어온 길을 기리는 오마주이다.

음악, 문학, 시각예술 등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정태춘 박은옥의 삶과 예술에 대해 헌사를 보냈다.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와 예술의 장벽을 넘어서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난 30년을 걸어온  두 예술가에 대한 존경을 담은 트리뷰트이다.

이 전시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있어 정태춘 박은옥의 예술적 위치를 재발견하는 프로젝트이다. 우리의 성찰은 표현의 자유 확대를 비롯해서 예술의 사회적 실천과 예술행동의 가치 지향을 공유하는 데로 이어진다.

여기 정태춘 박은옥 두 예술가에게 바치는 많은 이들의 오마주는 우리시대의 영웅을 향한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예술과 삶, 예술과 시대, 예술과 사회를 대하는 숨결과 눈길과 목소리와 몸짓을 나누려는 연대의 마음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이번 전시가 모두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미덕은 예술장르간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만남의 장을 연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태춘과 박은옥에 대해 보내는 찬사는 한 몸으로 시를 쓰고 가락을 짓는 예술가로서 지닌 탁월한 감성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한다. 그는 서정과 저항을 겸비한 예술가로서 예술 장르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서고 있다.

정태춘 자신이 시와 음악을 결합한 노래로부터 출발해서 시집을 내고 가죽공예 작업을 하며 근자에는 사진을 찍는 데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도 예술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실험정신은 이번 프로젝트의 근간을 이룰 만한 개념이다.

여기 모인 참여 작가들 또한 사진과 영상, 입체, 회화, 시, 서예, 음악, 연기 등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탈장르와 장르 혼융의 장을 열고 있다. 예술 영역의 장르별 경계를 넘어 연대의 마음을 가진 예술가들이다.

예술의 매체별 분화 시스템은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분업화한 예술 체계를 낳았다. 시와 노래와 그림을 한 몸에 지닐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간극을 넘어서려는 부단한 노력은 이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경계와 영역을 넘나드는 탈장르, 장르혼융의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한동안 다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다른 말로 인터아트(Inter-art)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사이예술’, 또는 ‘서로예술’의 상호주의 맥락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술 내에서의 장르별 분화 현상 뿐만 아니라 사회와 예술의 관계 또한 심난한 결별의 시간을 지나왔다.

우리시대의 예술은 사회와의 접점을 회피했던 탈접점의 모더니즘 시대로부터 이탈하여 사회와의 접점 속에서 소통을 만들어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예술세계와 더불어 이번 전시에 참가한 많은 작가들이 예술장르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형성하려는 탈근대적인 이행의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

행동하는 예술가 정태춘 박은옥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 또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소중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두 예술가의 삶은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예술가 주체의 행동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태춘은 <음반 사전 심의 제도> 철폐를 위해서 홀로 거대한 권력과 맞서서 예술인들에게 덧씌워진 족쇄를 풀어냈다.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그의 고독한 싸움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그는 다시 한번 거대한 힘과 맞섰다.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겨야만 하는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한 예술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와 그의 벗들은 패배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그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가 주체가 스스로 세상 속에 뛰어들어 접점을 만들고 그 속에서 예술적 실천의 방향과 방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이번 전시는 몇 해 전 음반 사전 심의 제도 철폐 10주년을 그냥 넘겨버린 데 대한 뒷마무리이며, 동시에 대추리에서 함께 했던 많은 벗들이 아름다운 패배에 대해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와 다른 장르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 메타언어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지키려는 예술행동, 즉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실천을 새롭게 해석한 결과물들이다. 많은 수의 예술가들이 정태춘 노래의 문학적 서사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떠나가는 배’를 선택한 작가들이 많다. 이상향을 향한 그의 목소리에 대해 공감대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다. 떠나가는 배의 영원한 낭만과 이상을 떠올리며, 다시 자율과 연대를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인 예술가들이, 예술가 주체의 자발성으로부터 사유와 감성을 획득하는 바로 그 대목, 자율의 이름으로 존재한다면, 그 예술가 주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연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자신의 세계를 원한다. 동시에 그 완결성을 가지고 바깥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자율과 연대를 한 몸에 지닌 예술가의 숙명이자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명의 열차에서 뛰어내렸노라’고 말하면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태도에는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환멸의 시대를 지나 막막한 어두움으로 진입하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그래도 그 어두움을 지나 다시 첫 차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이 동시에 담겨있다. 차에서 뛰어 내린 사람이 다시 차를 기다리고 서 있는 문제적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순 형용을 타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 문명의 열차에 오르지 않을 것이며, 우리들 또한 그들에게 함께 문명의 열차에 동승할 것을 권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박수를 보낼 것이다. 시대의 우울함과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문명 이탈, 그 낭만적 상상의 쓸모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쓸모 없음이 우리에게 매우 훌륭한 쓸모 있음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정태춘 박은옥 트리뷰트 :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큐레이터 | 데뷔30주년기념 행사

 

 

 전시장 스케치   2009. 10.28 | 경향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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